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신임 총리가 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의회 앞에서 취임 선서 후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친유럽 성향의 중도 우파 지도자 머저르 페테르(45)가 헝가리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이에 따라 16년간 이어진 ‘유럽판 트럼프’ 오르반 빅토르 전 총리의 친러·민족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과의 관계 회복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0일 헝가리 일간 마자르 넴제트에 따르면 머저르 신임 총리는 전날 수도 부다페스트 의회 연설에서 “국민이 우리에게 헝가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권한을 부여했다”며 “정권 교체가 아니라 체제 교체의 위임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코슈트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시민 앞에서 “여러분은 평범한 시민들이 가장 사악한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줬다”며 “오늘은 축제의 날”이라고 말했다. 광장에는 새 정부 출범을 축하하는 시민들이 몰렸고, 의회 건물에는 EU 깃발이 다시 게양됐다.
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총리의 취임식이 열린 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의회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머저르 총리는 오르반 빅토르 집권 시기 헝가리가 EU 내 대표적 부패 국가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면서 친오르반 성향 인사들에게 이달 말까지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사임 요구 대상에는 슈욕 터마시 대통령도 포함됐다. 또 부패 수사와 불법 취득 공공 자산 환수를 전담할 독립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취임식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오르반 시절 반정부 시위의 상징곡으로 알려진 ‘우리가 그룬드다’를 부른 뮤지컬 그룹 그룬드가 공연했고, 머저르 총리가 이끄는 티서당 의원들도 무대에 올라 시민들과 함께 축하했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르반 빅토르의 포퓰리즘 민족주의 노선이 오랫동안 세계 극우 진영의 모델로 여겨져 온 만큼, 이번 정권 교체가 부다페스트 안팎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총선에서 티서당은 전체 199석 가운데 14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머저르 총리는 이를 바탕으로 사법부·언론·공공기관에 뿌리내린 친오르반 세력을 정비하고, EU와의 관계 복원을 통해 동결된 수십억 유로 규모의 지원금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오르반 집권 기간 냉각됐던 EU와 헝가리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취임식이 EU 탄생의 기원을 기념하는 ‘유럽의 날’에 맞춰 열린 것도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티서당 소속 외무장관 지명자인 오르반 아니타는 “헝가리의 자리는 유럽에 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하고 확고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우르줄라 EU 집행위원장도 엑스를 통해 “머저르 페테르 총리의 취임을 축하한다”며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과 약속이 어려운 시기에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고 밝혔다.
다만 침체된 경제와 만성적 재정 적자, 언론·학계·사법부 곳곳에 남아 있는 오르반 측근 세력은 새 정부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