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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구역의 유령들

입력 2026.05.10 19:58

재개발이 시작된다는 흉흉한 입소문에 이어 급기야 동네 골목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는데, 어, 뭔가 좀 이상하다. 재개발추진위원회 대신 ‘모아타운 건설준비 위원회’라는 기이한 이름이 붙어 있다. 세입자에게는 투표할 권리도 알권리도 없어서, 쫓겨나는 게 언제인지나 확인하자는 심정으로 동네 부동산을 찾아갔다.

“모아타운이 뭔가요?”

“주민들이 직접 나라에 재개발 요청을 하는 거예요.”

“재개발인가요?”

“다르죠. 이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거니까.”

과연 기업은 기업이다. 스스로 재개발을 추진하게 하는 전략이라니 뒤통수를 맞았다. 정작 집에 살고 있는 내가 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는 뼈저린 사실도 깨달았다. 세입자는 재개발 추진에 대한 찬반투표를 던질 자격이 없었다. 인간이 되지 못해 유령처럼 흐물거리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나섰다.

며칠 뒤 최단기간 내 주민동의를 달성했다면서 새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주민의 70% 이상이 재개발에 찬성했고, 최단기간의 신기록이라는 내용이었다.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전에 살던 동네, 재개발구역의 유령이었다. 무례한 조사 과정과 보잘것없는 배상금, 이웃과 나눈 대화는 “얼마 받았수?”가 전부였다.

사람은 떠날 곳이나 있지, 길고양이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공사현장이 집이 되고, 오도 가도 못하는 나무들은 뿌리 뽑히기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다. 가장 불쌍한 존재는 다름 아니라 집이었다. 집이 허물어지는 일을 코앞에 두고 갭투자자인 집주인은 또다시 집을 팔았다. 새 집주인은 집을 본 적도 없이 구매했다가 다시 팔았다. 쫓겨나는 나보다 집이 더 불쌍했다. 정작 집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팔리고 파는 가격 사이의 이득에 눈이 먼 이들의 소유가 된다는 게 안쓰러웠다. 쫓겨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집에게 다정하고 자상했었다.

이득 위해 허물어지는 집들

며칠이 지나자 현관문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다. 가구 조사를 해야 하니 모아타운 추진위원회에 전화를 걸라는 통지서였다. 내 안의 유령이 이미 반대표를 던진 뒤였기 때문에 전화를 걸지 않고 며칠 버텼다. 혼자서 통쾌해하다가 불안해하기를 반복하다가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재개발구역에 살다가 이주를 할 때 실랑이를 벌이다가 상처받은 유령이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몇 사람이 살고 계시죠?”

내가 왜 그걸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상냥하게 1인이라고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생각했다. ‘사실 우리 집엔 네 식구가 살고 있고, 나머지 셋은 고양이거든요.’ 하지만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는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자진해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내 가족들의 존재를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모아타운 건설에 동참했다.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내쫓기 위한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상대도 예의 바르고 밝은 목소리로 대응했다. 데이트 날짜를 잡는 것처럼 둘의 대화는 순조로웠다.

재개발구역 이주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다. 그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재개발구역 철거를 하고 있는데,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고백과 그냥 되는대로 하라는 대답.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집들은 무사히 세상과 작별했을까? 마지막 가는 길을 서투른 초보 알바생에게 맡겨야 하는 오래된 집의 운명을 개탄스러워하며 꾸역꾸역 밥을 넘겼다.

쫓겨나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남아서 죽임을 당하는 존재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산동네라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자라난 들풀과 꽃들이 유난히 많았다. 무덤처럼 쌓여 있던 산만 한 쓰레기들과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의 처지야말로 가장 한스러웠다. 단풍나무는 무참히 베어지고, 집을 잃은 새들은 부산스럽게 허공을 맴돌았다. 거대한 포클레인이 쉴 새 없이 가난한 동네의 윤곽과 빛깔을 지우고 소리를 밀어내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만들었다.

포클레인이 지우는 ‘동네 주인’들

쫓겨나도 밀려나도 지워져도 잊히지 않는다. 내 안에서 베이고 갈리고 잘려 나간 그 동네가 유령처럼 살아 있다. 플래카드를 보면 소름이 돋고, 누군가 벨을 누를 때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깜짝 놀란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고, 진짜 세상은 내 안에 있는 거라고 믿는다. 집주인은 돈을 내고 집을 산 사람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다. 나다. 골목은 땅 주인의 것이 아니다. 길고양이와 들개, 나무와 새들, 몇 달째 구석에 방치된 쓰레기와 흙먼지야말로 진짜 동네 주민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재개발에 찬성한다는 투표를 한 적이 없다. 저 플래카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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