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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딸도 아픈 소비자도 아닌

입력 2026.05.10 20:02

수정 2026.05.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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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친구들의 돌봄을 받을 생각을 했어요?” 질문 뒤에 또 다른 질문이 덧붙기도 했다.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아요?” 내가 무척 용감한 사람이라거나 대책 없이 무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무려 ‘아픈 사람은 혈연 가족이 돌본다’라는 정상성을 거스른 사람이 된 거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암만 질병이 집안의 재앙이라 한들, 20년 가까이 따로 살던 성인들이 갑자기 붙어살면서 즐겁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증질환이라는 사건은 부모와 나의 관계를 이전보다도 부드럽게 만들기는 했다. 아버지 지인은 상황버섯 한 자루를 챙겨줬고, 친족들은 잘 먹고 낫는 데 쓰라며 용돈을 보내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와 부모가 기약 없이 붙어살며 서로의 꼴불견을 인내해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다.

아픈 딸 되기를 거부하고 나니 아픈 소비자가 될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몹시 아프고, 아파서 바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외부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는 가사노동자와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돌봄을 종합 패키지로 제공받는 방법이 있었다.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주변 사람들이 ‘암보험이 있는지’, ‘진단금이 얼마짜리인지’, ‘실손보험을 들었는지’ 묻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나와 또다시 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참 전부터 암 경험자 지인들이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양을 보아온 터였다. 그들은 모두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었다. 나는 비록 게으른 조합원이었지만, 암 진단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이곳에서 작성했다. 항암치료를 앞두고 이를 뽑아야 했을 때는 매우 정성 들여 쓴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건강을 돌보는 마을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 아플 때 돌보아줄 수 있는 이웃들이 모여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자원이었다. 퇴사했거나 필요한 때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지척에 살았다. 병원 로비에 속옷과 간식을 배달해줬다. 첫 항암 휴가를 앞두고서 특수 청소에 준하는 집 안 청소와 소독을 도맡아 해주었다. 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이 했던 일은 사회에서 평가절하되지만 실은 지극히 관계적이고 까다로운 노동이었다.

친구 자랑은 아니고, 우정 과시는 더더욱 아니다. 법적 가족 바깥의 돌봄을 현실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참고문헌 삼았을 뿐이라서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인 윤다림 작가의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도 내게는 그런 참고문헌 중 하나다. 그는 10여년을 함께한 동성 연인의 말기 암 진단 이후, 2년여간 연인을 돌보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글로 남겨왔다. 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늘 하고 싶었다. “제게 특별히 용기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윤 작가를 비롯해 먼저 아팠고 먼저 돌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배짱이었다. 친구들이 돌보아주었던 장면들은 다시 나의 참고문헌이 되었다. 아픈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의 면면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여러모로 고역스럽다. 그러나 그 예측 불가능성과 불편함과 힘듦이 공동의 과제가 될 때, 돌보는 행위는 나를 돌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돌봄받은 나까지도 한 뼘 성장시켰다.

가정의달이다. 사람을 기르고 돌보는 사회 최소 단위라고 여겨지는 그것. 그러나 아파도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준 이들은 비혼이었고, 여성이었으며, 성소수자였다. 수입이 많지 않고, 청년도 노년도 아니어서 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회가 바깥으로 밀어낸 삶이 길을 내어, 그 위에 내 삶을 얹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유병장수의 미래란, 변방에 있는 이들의 실천에 빚지고 있는 것 아닐까.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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