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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잔칫상에 정규직 수저만 놓을 건가

입력 2026.05.10 20:07

수정 2026.05.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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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노동조합답게 화제성이 대단하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오는 21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이 사태의 결말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노조 추산대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이 270조원에 이르고 이 중 15%가 성과급으로 책정된다면 직원 1인당 6억2000만원을 받는다. 세간의 이목을 끌고도 남을 만한 액수다.

파업이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까봐 우려하는 소액 주주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이끄는 강세장이 계속되고,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다는 인증 글이 소셜미디어에 쏟아지는 세상이다. 주주들에게 파업은 잔칫상을 엎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노조가 하는 일이란 게 본래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려다 사측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생산 중단도 불사하는 것이다. 파업은 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만큼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호황에 1인당 6억원 성과급 요구
노동계 ‘하청·협력 몫 없다’ 비판
삼전 노사, 11일에 사후조정 개시
기업·노조의 사회적 책임 다하길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노동계 내부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노조가 정규직끼리 이익을 나누는 데 매몰돼 있을 뿐 하청·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를 아우르는 연대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삼성전자가 거둔 막대한 영업이익은 수많은 울타리 밖 노동자와 함께 일궈낸 결실인데도 지금 노조의 요구에는 이들의 기여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나 부당한 요구를 해서 우리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된다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고 한 것 역시 노동계의 비판적인 시선과 궤를 같이한다. 노조가 연대, 정의, 평등 같은 노동운동의 정신을 파업의 대의명분을 내세웠을 때 여론의 지지를 얻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점이 아쉽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가 사업 부문별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번 사안이 ‘정규직만의 분배 투쟁’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킹산직(킹과 생산직을 합해 만든 조어)’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2023년 현대자동차가 10년 만에 공채를 재개했을 때 생산직 400명 채용에 12만명이 몰리면서 탄생한 말이다. 청년들이 앞다퉈 입사지원서를 낸 배경에는 현대차의 높은 임금·복지 수준, 정년 보장 등 우수한 근무 환경이 있다. 이런 여건을 만드는 데 노조가 기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차노조는 ‘강성 노조’라는 비난을 숱하게 들었지만 강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일자리를 마다할 인재는 없다.

인공지능(AI)발 일자리 위기론과 노동의 재편 가능성이 운위되는 때다. AI는 청년·여성·비정규직·하청 노동자 등 약한 고리부터 위협하고, 정규직 직무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사람의 노동권을 지키고 AI와 공존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조의 강력한 협상력이 필요하다. 이런 시기에 현대차노조가 사측에 현대차그룹의 사용자성이 확인된 사내 하청노조와 교섭할 것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 노조의 행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도체 호황 속에 SK하이닉스가 고액 성과급을 지급한 것을 계기로 이익 분배를 둘러싼 노사 간 힘겨루기는 올해 임금 협상의 큰 흐름이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하청 직접 교섭의 길이 열린 기업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급 요구 등이 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사의 선택은 다른 기업의 교섭에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은 11~12일 사후조정 절차를 통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중요한 것은 협상 타결 여부를 넘어 그 내용이다. 양측의 대화가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까지 모두 끌어안는 전향적인 합의로 이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정규직 돈잔치’ ‘그들만의 리그’에 그쳤다는 냉소는 면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최희진 정책사회부장

최희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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