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에 둔 ‘주주 자본주의’는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 투자의 관점을 넘어서서, 주주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기업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국가 산업 생태계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 나갈지를 모색해보고자 세 명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첫번째로 장하준 런던데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어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인터뷰를 차례로 싣는다.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상법 개정 이후 한국의 주주자본주의’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63·사진)는 상법 개정안 등 증시 부양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현 정부를 향해 “주식 시장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오히려 일자리·복지 같은 ‘좋은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잠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교수는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 등도 “그때 만약 지금 같은 식의 주주 자본주의를 따랐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며 “주주 자본주의가 극단적인 형태로 흐르지 않도록 자사주 소각 의무화 철폐, 장기 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테뉴어 보팅 도입 등 제도적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과거부터 재벌 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해 온 장 교수는 국내 법·제도가 기업의 일탈을 처벌하기 보다는 ‘어떻게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에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상법은 ‘주주 환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3번 개정됐다.
“지금까지 한국의 재벌 가문들이 주식 시장을 악용해 온 데다 주주들한테 분배를 너무 안 했던 측면이 있으니 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건 좋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주주 환원율이 늘어나다 보면, 주식 시장 주요 기능인 기업의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이 없어진다. 자사주 매입의 유일한 기능은 주가를 올리는 기능밖에 없다.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기업 경영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지 않나. 특히 미국처럼 빚을 내서 자사주를 사들이는 행위는 알짜 기업의 속을 빼먹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등 해외 주요국들에서는 어떤가.
“미국은 1982년 관련 제도가 합법화된 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대폭 늘었다. 보잉은 1998년부터 20년 동안 이윤의 120%를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번 돈보다도 더 많이 돌려줬다. 회사의 알짜를 빼먹은 결과 지금 보잉은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망신당하고 있지 않나. 교과서에는 ‘주식 시장은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기업에게 공급하는 장치’라고 적혀 있다. 그게 아니라 현금 자동인출기가 된 거다. 사실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주주들이 기업들에게 단기적 시야에서의 경영을 강요한다. 조금 위험하다 싶은 투자를 못 하게 한다.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국내 투자는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주주들에게 환원한 결과 중국 등 아시아로 일자리가 빠져나갔다.”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인 곳으로 돈이 흐르게 하겠다는 게 현 정부의 목표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돈을 부동산에서 빼서 주식 시장으로 옮기고 AI 도움을 받아서 현명한 투자를 하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점을 ‘머니 무브’에 두다 보니 한국의 근본적인 사회복지 미비, 계층 이동성 저하의 문제에서 초점을 비껴가고 있다. 주식시장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주택 문제는 사회 간접자본에 투자하는 등 주택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커지자 주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회사가 주주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니까 그렇다. 그러나 주주들 생각도 다 똑같지 않다. 한 개인 안에서도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노동자이자 소비자이자 주식 투자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노동자인데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있고 삼성전자 물건을 쓰는 사람은,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 가격이 비싸다. 깎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그러면 이윤이 줄어든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나쁜 거다. 그리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왜 노조한테 돈을 주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본인의 월급을 깎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논리를 국가 전체로 넓혀 보면, 개인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논의는 ‘어떻게 해야 나와 내 가족이 장기적으로 이 사회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느냐’로 흘러야 한다. 시민의 요구와 권한, 세금과 복지 혜택의 이야기로 흘러야 한다. 지금은 너무 주식시장과 주주의 권한에 몰입해 있다.”
-‘소액 주주 권리’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소액 주주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돈 많은 재벌들이 주식 10주 정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프레임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주주 자본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반 시민 주주가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외국 헤지펀드가 대부분이다. 단지 지배권이 없다는 이유로 소액 주주로 분류되는 것 뿐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계열사들끼리 자금 지원하는 행위도 제한한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계속 신산업을 발굴하려면 기업 집단 내에서 산업을 유치하고, 보호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처럼 돈이 철철 넘쳐나는 나라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업으로 개발하는 걸 어렵게 만들어버린다면, 그나마 있는 돈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요구한다면 무슨 돈으로 신사업을 개발하나.”
-지배주주·재벌의 편법과 전횡을 바로잡는 의미가 있지 않나.
“과거에 재벌들이 스웨덴 발렌베리 집안처럼 세금도 더 많이 내고 사회에 환원하는 대가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워낙 한국 재벌들이 국민들한테 밉보일 행동을 많이 했다. 국민들이 미워하는 건 당연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삼성·현대 같은 기업들이 없으면 한국이 지금 선진국 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런 기업들이 미국의 단기 경영자들처럼 배당 잔치하고 주가를 띄우는 데 몰두하면 한국 경제는 망하는 거다.”
-재벌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편법을 잡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할까’에 초점을 둔다고 느껴진다.
“맞다. 정부의 최종 목표는 어떻게 하면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유도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정의선 승계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됐다. 일감 몰아주기는 한국 재벌만 하는 게 아니다. 계열사를 만들어서 함께 운영할 때 시너지가 나기 때문에 그런 구조를 택하는 기업들이 많다. 좁은 주주의 시각에서 보면 현대차가 차 만드는 회사인데 왜 물류와 철강 사업을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그런 수직계열화된 구조가 해외 진출 시 오히려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한 법리적 관점에서 ‘너희는 A사업 회사인데 왜 B를 하느냐’는 식으로만 볼 수는 없다.”
-주주 간섭으로부터 경영 활동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대부분 주주들은 단기 주주이고, 인덱스 펀드 형태로 투자하므로 개별 기업의 경영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다. 예컨대 SK그룹의 SK하이닉스 인수 당시 주주들이 볼 때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건 정말 좋은 기회’라며 단행할 수 있는 거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후 10년을 계속 적자를 냈다. 그때 만약 지금 같은 식의 주주 자본주의를 따랐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 측면이 있지 않나.
“모든 건 손익이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기 때문에 외국의 단기 주주들이 접근을 잘 안 했고,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장기적 경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 재벌 체제의 구시대적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국 등 해외 기업들도 그에 버금가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외국 투자자들이 대한항공 딸이 이상한 짓을 했다고 해서 돈을 안 넣겠나. 많이 준다면 아무 상관없다. 순수히 금융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 1억 달러를 넣으면 기껏해야 1000만 달러를 빼올 수 있고, 미국 기업에선 3000만~4000만 달러를 빼올 수 있다면 어디다 넣겠나. 그래서 디스카운트가 생기는 거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현대차가 완전히 주니어 기업이었을 때부터 주주 중심으로 경영하게 했으면 지금 같은 기업이 나왔겠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던 게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라고 생각한다.”
-제도적 대안이 있나.
“과장해서 말하면,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게 꼭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해소를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주주들이 돈 빼가기 쉽게 만들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재벌 기업 세대가 교체되고 전문 경영인들이 들어오면서 20~30년 후에 한국도 미국처럼 주주환원율이 90%가 되는 날에는 나라가 망하는 거다. 최소한의 제도적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차등의결권이 됐든, 테뉴어 보팅이 됐든, 장기 주주들에게 배당 프리미엄을 주든. 예컨대 3년 보유하면 배당을 15% 더 주고 5년 보유하면 30% 더 주는 식으로 장기 보유를 권장하는 방법도 있다. 자사주 매입에 상한선을 두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철폐하고,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주식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직장도 있고 소비자이기도 하고 납세자이기도 하다는 거다. 그런 걸 다 균형 있게 생각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인 제도를 통해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그게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도로에) 신호등이 있고 과속 방지턱도 있고 속도 제한도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에도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