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탕수육 만유기’ 저자 신인철
노포부터 화교사까지 누비며 파고든 기록
<대한민군 탕수육 만유기>저자인 신인철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중국 음식점에서 탕수육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고만고만한 식도락가의 탐방기쯤 되는 줄 알았다. 전국 탕수육 맛집 소개와 주방 숨은 고수들과의 인연, 에피소드를 곁들인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탕수육 논문’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책이다. 어린 시절 추억의 탕수육 맛을 찾기 위해 시작한 노포 중식당 기행은 중국과 동남아, 영국까지 이어지고 한국 중화요리의 역사와 화교 이민사가 뒤얽힌 대사업이 됐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신인철씨(51)는 자타공인 탕수육 ‘덕후’다. 최근 그가 내놓은 <대한민국 탕수육 만유기>는 40년 넘게 즐겨온 탕수육에 관한 치열하고 흥미로운 기록이다. 지난달 28일 그와 만난 곳은 서울 연남동의 중식당 띵하우였다. 틈틈이 ‘관리’하는 전국 중식당 리스트는 400곳이 넘는다. 그럼에도 주 3회 탕수육을 먹으며 늘 새로운 곳을 발굴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얼마전에 알게 된 곳인데 2주동안 3번 왔다”고 말했다. 새로운 중국집을 발견하면 탕수육과 함께 반드시 볶음밥을 맛본다. 중국요리의 기본 도구인 웍을 다루는 솜씨를 알 수 있어서다. 짬뽕이나 짜장 등 면요리까지 맛보면 그 식당을 감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이날 식탁 위에는 탕수육과 이과두주, 그리고 “바싹하게 튀긴 마른 고추 맛이 기가 막히다”며 권한 향라오징어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1970년대 태어난 세대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 같아요. 그 시절 짜장면도 기분 좋은 특별한 음식이었는데 탕수육은 최상의 대접을 받는 느낌이잖아요. 졸업식 날이나 큰 집으로 이사했을 때 같은, 어른들이 큰 맘 먹고 시켜주는 그런 음식. 즐거운 기억과 행복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축제나 잔치의 맛이죠.”
대학시절 다른 친구들보다 과외를 더 많이 뛰었던 것도 탕수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졸업식 날 단골 중국집 사장이 “인철 학생 졸업하면 이제 우리 뭐 먹고 사냐”고 농담섞인 걱정을 할 정도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탕수육 탐방이 시작됐다. “그 집 탕수육 괜찮다”는 말만 들어도 길을 나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쉽고 헛헛했다. 마음만 먹으면 탕수육을 먹을 수 있었지만 예전의 그 ‘진짜’ 탕수육은 찾기 힘들어졌다. 소스의 색과 맛의 균형도, 재료의 원칙도 ‘무너졌’다. 급기야 ‘부먹찍먹’ 논쟁까지 벌어지는 모습엔 부아가 치밀었다. “탕수육은 원래 튀긴 고기에 소스를 부어 불 위에서 한 번 더 굴려 내거나, 아니면 고기 튀김 위에 소스를 덮밥처럼 자작하게 얹어서 내는 음식이에요. 그런 논쟁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대한민군 탕수육 만유기>저자인 신인철씨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중국 음식점에서 탕수육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패기만만하던 30대 초반의 직장인은 어릴 때의 그 ‘맛’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현존하는 노포들을 찾아 나섰다. 내친김에 탕수육은 어떻게 생겨나 현재에 도래했는지, 그 원형은 어떤 음식이었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전국의 노포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중국 본토와 동남아까지 발품을 팔았다. 화교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어떤 식으로 중국요리가 진화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영국도 찾아갔다. 광둥과 홍콩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간 중국음식이 현지 입맛에 맞춰 어떻게 변형됐는지 확인하면 한국식 탕수육 원형에 대한 실마리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가족들과의 휴가 역시 ‘꿍꿍이’를 품고 계획했다. “대영박물관이랑 테이트모던은 한번쯤 봐야 하지 않을까” “네가 좋아하는 마라탕의 원조가 궁금하지 않니?” “요즘 가장 뜨는 가족여행지가 말레이시아래”. 설득과 읍소, 고집이 뒤섞인 그의 주장에 아내와 딸은 기꺼이 ‘넘어갔’다. 처가인 창원에 내려가면서도 휴게소 대신 내륙지역의 중국집을 주요 기착지로 삼을 정도이니 이쯤이면 가족들은 이해를 넘어 해탈의 경지에 있다해도 무방할 듯 하다. 그는 얼마전 의사의 경고를 받고 4개월간 10㎏이상을 감량할만큼 혹독한 식단과 운동을 이어가면서도 탕수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식사를 겸한 인터뷰 도중 그의 탕수육 강의가 이어졌다. 중국 동북 3성의 꿔바로우, 광동과 푸젠 지역의 고로육, 한국식 탕수육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다가 한국 화교사,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노포들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풀어놨다. 그 사이 이과두주는 4병이 비워졌다.
그토록 원하던 ‘옛 맛’을 찾았는지 묻자 그는 “다 헛된 일이었다”며 웃었다.
“탕수육은 맛도 맛이지만 어린 시절의 기분 좋은 추억들과 엮여 있잖아요. 지금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에서 먹는 것이 최고의 맛있는 음식인데 맛만 따지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은거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언짢은 기분으로 먹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소스가 새콤하든 달콤하든, 튀김옷이 바삭하든 눅눅하든 결국 한 접시의 맛은 그날 함께 하는 사람과 기분에 달려있다. 맛있는 음식은 그것을 먹던 날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