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 쌍 변이를 찾아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게티이미지
하나만 있을 땐 영향이 미미한 유전자 변이라도 다른 특정 유전자 변이와 한 쌍을 이루면 자폐스펙트럼 장애 발병과 높은 연관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와 고려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안준용 교수 공동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의 연구를 국제학술지 ‘유전체 생물학(Genome Biology)’에 발표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진은 한국인 자폐 가족을 포함한 동아시아계와 유럽계 총 5만9168건의 다민족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자폐와 연관성이 뚜렷한 유전자 쌍(동아시아계 6쌍, 유럽계 156쌍)을 발굴했다.
자폐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질환으로, 유전적 요인이 발병에 크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영향력이 작은 희귀 변이들의 역할을 밝혀내기는 어려웠는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은 ‘유전자 쌍 변이’에 주목하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도입했다.
분석 결과, 함께 변이될 때 자폐 연관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다수의 유전자 쌍 변이가 확인됐다. 이들은 신경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세포 간 연결을 가능하게 해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포골격’의 형성 기능과 관련이 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유전자 쌍들이 변이되면 세포골격의 경로가 손상돼 결국 자폐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굴된 유전자 쌍이 실제 세포에서도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실험에서도 유전자 쌍 변이가 나타내는 시너지 효과가 관찰됐다. 세포실험을 통해 해당 유전자 쌍 가운데 유전자 하나의 기능만 억제했을 때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으나, 두 유전자의 기능을 모두 억제하자 세포 표면의 섬모 형성이 뚜렷하게 감소했다. 섬모는 세포가 주변 환경의 신호를 감지하는 구조물로, 정상적인 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유전자 쌍 변이의 영향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해당 변이를 가진 남성 자폐 환자는 자폐 증상의 심각도가 높았던 반면, 여성 환자는 같은 유전자 쌍 변이를 가지더라도 증상의 심각도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유희정 교수는 “같은 유전 변이라도 성별에 따라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발견은 자폐 진단과 지원에서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이번 연구는 자폐의 맞춤형 진단 전략과 예측 모델 개발에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준용 교수는 “개별적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아 기존 분석에서 놓쳤던 유전 변이들이 특정 조합으로 함께 나타날 때 자폐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접근법은 자폐뿐 아니라 다른 신경발달 질환의 유전적 원인을 밝히는 데에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