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화를 국제화하자는 범정부 차원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원화는 특정한 시간대에 정해진 기관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만 환전할 수 있는데, 앞으로 24시간 세계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자는 것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취임사에서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 외환거래의 접근성과 안정성을 국제 기준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의 첫 회동에서도 원화 국제화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재경부와 금융위원회, 한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원화 국제화 TF’를 출범시키며, 올 상반기 중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원화 국제화가 바꿀 미래는 장밋빛으로 그려진다.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시장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발표하는 주가 지수에서 한국이 신흥국이 아니라 선진국 지수로 상향 이동할 것이란 기대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투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되면서 국내 주가는 더 오를 수 있다. 이는 부동산에서 주식으로의 ‘머니 무브’(자금 이동)를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부합한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원화 국제화의 효용 및 리스크에 대한 재고찰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에서 수출입기업이 원화로 결제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이 원천적으로 사라진다”고 밝혔다. 달러 결제를 원화로 대체할 수 있으니, 달러가 부족해 위험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달러 수급을 위해 ‘서학 개미’에게 ‘국장’으로 돌아와달라고 읍소할 필요도 없다.
이 밖에 해외여행을 갈 때 원화를 그 나라 통화와 맞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단 달러로 바꿔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국내 기업은 해외에서 원화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열린다.
이렇게 좋다면 왜 아직 원화거래 시장이 개방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가장 큰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트라우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선 많은 사람이 실직을 하고, 빚더미에 앉고, 가정이 파탄 났다. 한국엔 다신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는 방어 기제가 강했다. 김영삼 정부의 섣부른 세계화, 시장 개방이 외환위기를 불렀다는 지적도 있었다. 원화 시장을 개방했다가 외국 자본의 환투기 공격에 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 원화 국제화를 하면, 금융당국이 더는 원·달러 환율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작동했다.
집권 세력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원화 국제화를 밀어붙일 동기가 부족했다. 원화 국제화를 했다가 경제 가 안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었다. 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었다. 그간 여러 정권이 원화 국제화를 추진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다.
이재명 정부가 원화 국제화에 성과를 내려면,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수십년의 관성을 깨고 정말 원화 시장을 개방하면, 초기에 다소간 혼란은 불가피하다. 예상되는 문제에 철저히 대비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라고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조미덥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