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결정하는 요인을 두고 경쟁해온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특정 정당에 대한 심리적 유대감인 정당 일체감이 투표를 좌우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나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지, 즉 정책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정당 일체감이 투표를 예측하는 데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정책 선호와 달리 집단 정체성에 기반한 정당 일체감은 강한 지속성을 띠고 있어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정당 일체감이라고 해서 정책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정당 일체감도 내 정당이 내 이익과 가치를 보호한다는 경험과 믿음이 축적된 결과다. 당이 이익과 가치를 반복적으로 훼손하면 정당·지지자 관계도 임계점을 넘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누구 말마따나 민주당은 호남이 하라는 대로 했고, 대구는 국민의힘이 하라는 대로 했다. 그 결과, 대구는 1인당 지역 내 총생산 전국 꼴찌를 기록 중이다. 게다가 대구가 무한 신뢰를 보내며 떠받친 권력이 내란을 일으켰다. 내란 이후에는 보수정당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대신 극우정당으로 망쳐놓았다. 더 이상 대구가 사랑하던 정당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대구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해치고, 한국의 주류인 보수의 긍지와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대구·국민의힘 관계를 재정립할 때가 왔다.
관계 재정립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한국인은 적대적 공존을 위한 담합체제인 양당제에 갇혀 있다. 양당제는 다른 선택지를 제한하면서 시민의 손발을 묶는 인질정치를 한다. 장동혁이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도는 것도 보수층을 인질로 잡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현실에서 인질정치는 더 잘 작동한다.
보수층이 일부 결집하면서 바닥 지지율이 반등했지만, 전통적인 영남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기저효과 때문에 마치 선전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착시 덕분에 장동혁은 다른 영남지역에서 패배해도 대구에서 승리하면 보수의 심장을 지켰다며 버틸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대구를 고민에 빠뜨리는 게 국민의힘만은 아니다. 민주당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모든 재판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한 공소 취소 특검법 추진은 그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드러낸다. 권력을 쥐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윤석열이 보여준 바 있지만, 이재명과 민주당이 흉내 낼 줄은 몰랐다. 민주당은 여론 악화로 공소 취소 특검을 선거 후로 미루면서도 포기한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대구는 이런 장면을 지켜보며 ‘못난 것들 사이의 선택’이란 딜레마에 빠졌다고 절망할 수 있다. 그러나 탈출구가 있다. 민주당이 누굴 믿고 겁 없이 선거 코앞에서 사법내란이나 다름없는 사법체계 파괴를 기도하겠는가? 장동혁이다. 그는 민주당 폭주의 버팀목이자 민주당에 독주·독단의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영혼의 단짝이다. 국민의힘에 변화를 위한 압력이 충분히 쌓여있다. 장동혁이란 안전핀만 뽑으면 바로 폭발한다. 안전핀은 대구의 손에 있다. 다른 영남지역에서 승리해도 대구에서 패배하면 버티기 어렵다.
그를 먼저 퇴진시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힘은 변화를 위한 행진을 시작하고, 민주당은 긴장할 것이다. 그때는 국민의힘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공소 취소? 엄두도 못 낸다. 나아가 대구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 민주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로 획일주의에 균열을 내고, 다원성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소모적 정쟁을 하느라 지방소멸 같은 진짜 문제를 가렸던 양당 대결정치도 바꿀 수 있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 대구의 선택 한 번으로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의 충격이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대구가 국민의힘을 바꾸고, 바뀐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바꾸고, 그런 변화가 한국 정치를 조금이라도 고치는 연쇄작용을 기대하는 것이 헛된 꿈은 아니다.
대구가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대구는 상상하고 있다. 장동혁과 윤어게인 세력에만 나쁘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상상. 그걸 누가 금지할 수 있나? 국민의힘은 대구를 살리는 데 실패했지만, 대구는 국민의힘을 살릴 수 있다.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