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회 등 시민단체, 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 추모주간 선포
“여성이 안전한 사회로” 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를 엿새 앞둔 11일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소속 활동가와 시민들이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여성 살해는 개인 불운 아닌 시스템의 문제” 정부에 대책 마련 촉구
‘정청래 오빠 논란’ 언급하며 “여성을 복종해야 할 존재로 인식” 비판
한 남성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오는 17일 10주기를 맞는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11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0주기 추모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10년 전과 달라진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며 정부에 여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과 남양주 교제폭력 살인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 대상 살인·폭력이 반복되는 현실’을 성토했다. 동덕여대 재학생연합 소속 A씨는 “여성들은 우연히 벌어진 범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여성이 그 사건 이후 ‘살아남은 내가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여성들이 느껴온 불안과 공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은 “사건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달려왔다”며 “강남역은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각성과 결집, 행동이 새겨진 이름이 됐다”고 했다. 김혜정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5일 광주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됐다”며 “응급구조사를 꿈꾸던 소녀의 삶이 그렇게 멈췄다”고 말했다.
윤미영 서울여성회 사무처장은 “여성 살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며 “강남역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개인의 불운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지금도 대한민국이 여성에게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지, 보도되지 못한 젠더폭력은 얼마나 많은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차별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 유세 중 어린 소녀에게 후보를 ‘오빠’라고 불러보라고 하는 장면이 보도됐다”며 “단순한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을 동료·시민이 아닌, 보호를 받거나 복종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문화”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여성 살해가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강남역을 잊지 않고 정부와 정치가 응답했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직장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폭력을 겪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죽은 듯 누워 있는 ‘다이 인(Die-in)’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성폭력 희생자들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의미를 담아 사이렌에 맞춰 약 10분간 도로에 누웠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다시 일어난 이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고 외쳤다.
강남역 살인 사건 10주기인 오는 17일 오후 2시 강남역에서 추모 행동이 진행된다. 같은 날 한국여성의전화 등은 지난해 친밀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살해당한 여성 137명을 추모하는 뜻을 담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마포구 평화의공원까지 달리는 ‘137 RUN’ 행사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