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치운 실내악 무대의 속뜻
지난달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연에서 관악기 연주자들이 서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 서용선 작가의 ‘단종 그림’이 걸려 있는 갤러리 가운데에는 야마하 그랜드피아노가 뚜껑이 닫힌 채 놓여 있었다. 무대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걸어나와 선 채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주 1번을 연주했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이들이 퇴장하자 스태프들이 의자 2개를 갖고 나와 자리를 만들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첼리스트 강승민이 등장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들은 눈빛을 주고받은 뒤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개막해 이달 3일 막을 내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연주자들이 다 같이 서서 연주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앉아서 연주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첼로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그러고 보니 첼로가 함께 등장하는 무대는 대체로 연주자들이 앉아서 하모니를 맞췄다.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개막공연에선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등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모두 선 채로 생상스의 곡을 연주했다. 27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선 5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이 앉아서 폴 유온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날 무대에 올랐던 관악기는 오보에와 클라리넷, 플루트, 호른, 그리고 바순이었다. 바순 역시 구조와 주법상 대체로 앉아서 연주해야 하는 악기이다보니 이날 다른 악기 연주자들도 함께 앉아 호흡을 맞췄다. 그렇다면 앉아서 연주해야만 하는 악기가 있고 없고에 따라 다른 연주자들의 자세도 정해지는 걸까.
정답은 없다. 실내악 무대의 의자는 악보에 적힌 규칙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선택에 가깝다. 지휘자가 없는 실내악에선 연주자들이 서로를 보며 호흡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누가 숨을 먼저 들이쉬는지, 누가 활을 먼저 움직이는지, 누가 고개를 들어 시작 신호를 보내는지가 음악의 출발점이 된다. 앉고 서는 문제는 연주자들이 눈높이와 몸의 신호, 연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실용적 선택인 셈이다.
앉아서 연주하면 안정감이 있지만 몸의 반경은 줄어든다. 연주자 수가 많아지는 무대는 공간의 한계 때문에 앉을 수밖에 없다. 서서 연주하면 몸을 더 크게 쓸 수 있어 표현이 자유로워진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서서 하는 연주가 훨씬 박진감 있게 보인다. 27일 무대에서 서서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의 몸짓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활의 움직임뿐 아니라 허리와 무릎에까지 음악이 실려 있는 듯했다.
미국의 대표적 실내악단으로 명성을 날렸던 에머슨 현악 4중주단(2023년 해단)은 2002년부터 이 같은 관습을 비틀어 화제가 됐다. 첼로만 높은 단 위에 앉고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는 서서 연주했다. 이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세처가 2009년 바이올리니스트닷컴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꽤 현실적으로 설명했다. “우리 모두 키가 큰 편인데 낮은 의자가 불편했어요. 활이 무릎에 닿아 다리를 뒤로 빼고 의자 밑에 넣어야 할 때도 있었고요. 불편한 이유가 정말 많았어요. 벌써 7년째 이렇게(서서) 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