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폴란드에 다녀왔다. 오랜 가톨릭 국가이며 현재도 보수정권이 우세인 폴란드는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다. 2025년 11월 유럽연합(EU) 사법재판소가 EU 회원국들은 EU 안에서 맺어진 동성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폴란드처럼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도 유럽연합 안의 다른 나라에서 결혼한 동성부부의 혼인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판결을 바탕으로 올해 3월, 폴란드 최고행정법원은 독일에서 결혼한 동성부부가 폴란드 정부에 신청한 혼인증명서를 발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 이제 폴란드 사람들 모두 성별에 관계없이 혼인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느냐 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르샤바 시청은 여전히 동성부부의 혼인증명서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오로지 소송을 거쳐 혼인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판결을 얻어낸 부부의 혼인관계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바르샤바 시청의 태도이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와 폴란드 최고행정법원 양쪽이 명확하게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일부러 협소하게 해석하는 시 정부의 태도는 차별적이고 혐오적이다. 여기에 실망하여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바르샤바 시 정부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기도 했다.
바르샤바 시는 2014년도에 취임한 한나 그론키에비츠발츠 전임 시장 때부터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했다. 현 시장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퀴어문화축제 행진에도 참여하고 바르샤바 중심가 랜드마크 ‘문화과학궁전’에 무지갯빛 조명을 비추었다.
폴란드처럼 보수적인 국가에서 수도 바르샤바 시장님이 퀴어문화축제 행진단 선두에 서다니 굉장한 분이라고 나는 내심 부러워했다. 그런데 무지개 깃발은 들지만 혼인증명서는 발급해줄 수 없다니 ‘트 시장님’ 매우 실망이다.
한국에서는 2024년 7월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서 배제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10월 동성부부 11쌍이 수도권에서 혼인평등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4월 영남권 동성부부 3쌍이 부산, 대구, 울산 가정법원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혼인신고는 서류의 문제라서 신고서 양식의 ‘남편’과 ‘아내’를 ‘배우자1’과 ‘배우자2’ 정도로 바꾸면 된다. 나는 혼인신고할 때 10분도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법적으로 성인이고 독신인 두 인간이 서로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혼인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는데 누구는 10분 걸리고 누구는 소송을 해야 한다니 너무 불공평하다. 그래서 나는 혼인평등 캠페인 ‘모두의 결혼’을 적극 지지한다. (굿즈를 열심히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폴란드의 경우를 보니 사법적으로 승리하더라도 실제로 제도적인 평등, 나아가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평등을 이루기까지 또 갈 길이 멀 것 같다. 폴란드처럼 법원의 판결을 실무처에서 협소하게 해석하거나 인권운동가이고 연대자인 줄 알았던 정치인이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서는 것은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한국에서도 활동가들이 아마 많이 겪어온 상황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모든 일이 다 차별과 혐오의 소산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도입부에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썼다. 여기서 19세기의 ‘행복한 가정’은 남성이 가장으로서 지배하고 여성 배우자와 자녀들이 따르는 형태의 가정이다.
그런데 이런 ‘정상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가 불행한 이유는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이 고아로 자라 정서가 메마르고 차가운 인물이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이것은 명백히 고아에 대한 차별이다. 대대로 ‘정상 가정’이 아니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니 살기 너무 힘들다.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5월, 가정의달에 행복한 가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어른과 어른, 아이와 어른, 혈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비인간 동물과 반려인간, 어떤 조합이라도 함께 사는 존재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한다면 행복한 가정이고,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정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