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양상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5월14일부터 미국과 중국 정상회담이 열린다. 역사상 가장 불안정한 지정학적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 심화하는 기후위기 같은 산적한 난제들을 하나라도 풀어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두 나라는 에너지의 지정학에서 양극단을 대변한다. 미국은 석유와 가스 1위 생산국이며 화석연료에 더욱 의지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을 식자들은 ‘석유 국가(petrostate)’라고 부른다. 반면 중국은 태양전지, 풍력터빈, 배터리,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화 분야에서 압도적 지위를 확보해 ‘전기 국가(electrostate)’가 되었다. 전 세계 80% 이상의 태양광 패널을 공급하는 중국은 자국 내 자동차 판매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로 채우고 있음은 물론, 1차 에너지의 30% 이상을 전기로 공급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 결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의 충격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은 물론 글로벌 녹색 수요의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물론 중국의 녹색산업은 애초에 기후 대응 목표보다는, 경제성장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더욱이 재생에너지나 전기차 확대가 확실히 돋보이지만, 석탄과 석유 소비도 늘어나고 있어,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에너지 추가’를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얹어진다. 하지만 중국의 석탄 소비와 석유 소비는 이미 정점에 도달했거나 적어도 2030년 이전에 정점을 지날 예정이고 이는 중국 정부가 약속한 탄소 정점 시점과 대체로 겹친다. 이미 석탄 발전량은 지난해에 약 1% 감소했다.
어째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기후 대응을 위해 필수적인 녹색기술이나 녹색 혁신에서 권위주의 국가 중국에 뒤처지게 된 걸까? 일부에서는 서구 시장경제의 근본적 결함을 지적한다. 수익성을 찾아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후를 위한 녹색 투자는 당장에는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확실히 반도체나 AI 분야 등과 달리, 녹색 분야는 여전히 정부의 지원 없이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녹색기술이나 녹색 인프라는 아직 초보 단계에서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 심지어 기후 대응은 오히려 당장 수익성이 좋은 탄소 집약적 산업에 대한 대대적 축소를 요구한다.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투자는 시민에게는 이로우나 수익성은 없다.
민주주의 역시 기후 대응에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주기적인 선거철마다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는, 장기적인 전략 아래 수행되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녹색 전환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 대응은 모든 유권자에게 장기적으로는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그 혜택은 시공간적으로 분산되고 부담은 즉각적이다. 그러므로 당장 다음 선거에서 기후 정책을 내세운 정당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이른바 ‘기후 백래시’는 이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수익성에 크게 얽매이지 않은 전략적인 투자와 단기적인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는 중국 같은 권위주의 엘리트 국가만이 에너지 전환과 녹색 전환에 성공해 기후 대응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미래가 펼쳐질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1945년 이후 수십년간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점에,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안정된 중산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꽤 장기적인 제도를 설계하고 전략적 공공투자도 수행했다. 오늘날 탄탄한 복지제도와 공공 주도의 장기적 정보기술(IT) 혁신 역시 그 시대의 산물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극도의 불평등과 정치 양극화로 인해 무너진 안정적인 민주정치 기반이다. 또한 지나치게 시장에만 의존해온 경제 구조 속에서 국가의 역할이 심각하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을 줄여 정치적 안정화를 도모하는 한편, 국가가 강력하고 비전 있는 녹색산업 정책을 펼쳐 적극적으로 시장 창출에 나선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기후 대응에 더 뛰어난 역량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 분열의 시대에 한국 같은 민주주의 중견국가가 전략적 전망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에너지 전환과 녹색 전환의 성과를 쌓아간다면, 국내적으로 미래 녹색산업의 기회는 물론이고 새로운 글로벌 기후 대응 연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강력한 녹색 제조 기반을 보유한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