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 봐도 너무 과하다. 최초엔 수십만명, 지금은 몇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몇번이나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상록수’ 취재를 처음 시작할 당시 한 부실채권 업계자의 말이다.
민간 부실채권 처리회사(배드뱅크)인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회사의 출범 취지는 좋았다. 2003년 카드대란 카드연체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채무 규모만 5조1900억원, 차주만 약 86만명에 달하는 초대형 민간 배드뱅크였다.
그로부터 23년, 연체채권을 조정해준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이재명 정부의 새도약기금이 발표됐지만 가장 오래된 연체채권 중 하나인 상록수엔 여전히 7000억원의 빚을 보유한 9만명의 차주가 남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 몇번이고 되물었다. 두 번의 ‘빚 탕감’ 정책이 시행됐는데 왜 남아 있을까.
상록수의 출자사인 은행과 카드사는 정권마다 ‘포용금융’을 강조해왔지만 상록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유는 돈이었다. 업계에선 상록수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렀다.
자산관리자이자 추심을 담당하는 MG신용정보 입장에선 추심 규모가 클수록, 추심을 할수록 돈이 들어왔다. 채무조정을 하면 손해였다. 금융회사도 사실상 전액 손실처리했던 채권에서 매년 100억원이 상환되고 수십억원의 배당을 받았다. 그제서야 이해됐다. 금융사들이 연체채권을 매각할 이유가 없었다.
상록수는 금융회사가 아닌 ‘자산유동화회사’인 만큼 존재도 채무도 숨길 수 있었다. 은행에 있으면 진작 채무조정될 채권이었지만, 상록수로 넘어가면서 상록수 채무자들은 죽을 때까지 상환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빚더미에 깔렸다.
빚은 빚을 만들어 재기를 어렵게 했다. 경향신문이 만난 차주들은 재기의 의지도 컸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빚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기는커녕 생을 마감하려 하거나, 평생 떠돌이 생활을 했다. 23년간 침묵했던 은행과 카드사는 하루 만에 부랴부랴 새도약기금 매각 결정을 내놨다.
하루 만에 나올 수 있는 결정을 미루고 미뤘다. 금융회사들은 과연 진정한 포용을 원했을까.
경제부 |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