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I 전년비 3.8% 상승···에너지 가격 급등 영향
물가 상승률, 3년 만에 첫 임금 상승률 앞질러
트럼프 “경제 상황 전혀 생각 안 해” 발언 논란
중간선거 앞 지지율 34% 추락···경제 민심 ‘싸늘’
이란과의 전쟁 여파로 지난달 미국 물가가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 상황에서) 미국인들의 경제 상황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장바구니 ‘빨간불’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8% 상승해 2023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미국 식료품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했고, 외식비를 제외한 식재료 가격도 2.9% 올랐다. 특히 과일·채소 가격 상승률이 6.1%로 가장 높았다.
노동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BL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에너지 가격은 17.9% 올라 전체 CPI 상승분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내 가스 가격은 최근 1년 동안 약 30% 뛰었는데, 지난달에만 5.4%가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휘발유 가격은 전년 대비 28.4% 올랐다.
주목할 점은 물가 상승률이 3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 상승률(3.4%)을 앞질렀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시간당 평균 실질임금이 3월에서 4월 사이 0.5% 감소했다고 밝혔다. 임금이 올라도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소비자 심리지수 역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백악관은 의약품·병원비 하락과 제조업·건설업 임금 상승 등을 근거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경제 성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사실상 임금 삭감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내 관심사 이란 핵 저지뿐”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인들의 경제 상황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파장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재정 상황이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내가 생각하는 건 단 하나,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미국인들의 경제 상황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의 경제 정책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를 보고 있으며 “주식시장이 조금 오르내려도 미국인들은 이해할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유가는 떨어지고 증시는 급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도 전쟁으로 인한 경제 혼란은 일시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국내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6달러를 넘었는데 트럼프는 말 그대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충격 수개월 이어질 듯”···트럼프 경제 지지율 ‘휘청’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분야 지지율은 휘청이고 있다. 최근 WP·ABC뉴스·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분야 국정 지지율은 34%까지 떨어졌다. 물가 대응 긍정률은 27%, 생활비 대응 긍정률 23%에 그쳤다. 이란 문제 대응에 대해서는 응답자 60%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비료 가격 상승 충격이 수개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회계컨설팅업체 RSM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지프 브루셀라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하반기 CPI 상승률이 4%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또 “미국 중산층 가정은 하반기 생활비 조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앤 스웡크 KPMG 미국 지사의 수석 경제학자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것은 단순한 에너지 충격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목격했던 혼란을 떠올리게 하는 공급망 충격”이라며 “이번 사태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고율 관세 정책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경제정책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이번 인플레이션 보고서가 트럼프의 정치적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