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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사회, 우리는 왜 더 불쾌해졌는가

입력 2026.05.13 20:10

수정 2026.05.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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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안정적이고 제법 평화롭다. 지하철에선 내릴 사람들이 모두 하차한 다음 승객들이 올라타고, 임신부 좌석은 대개 비어 있다. 거리에서 쓰레기와 마주칠 일도 드물다. 서울이 언제 이렇게 살기 좋은 도시가 됐지.

그런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이나 버스에 큰소리로 통화하는 무개념 승객이 흔했다. 지하철에서도 타고 내리는 승객들이 엉키곤 했다. 지금 보면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다. 우리는 매끄럽고 쾌적한 일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최근에야 시작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쾌적함’에 누군가 균열을 내면, 목청을 높이게 된다. 음식 배달이 늦어도,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도 과민 반응을 한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요즘 학교 운동회는 소음이 날 수 있으니 사과부터 하고 연다고 한다.

이젠 매끄러운 일상에 너무 익숙
‘당연함’에 균열을 내면 목청 높여
도 넘은 민원 쏟아지는 학교 현장
‘쾌적함’이 배제와 통제의 연료 돼

현장체험학습 역시 온갖 민원이 쏟아진다고 한다. 교사들은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까지 떠안다 보니 체험학습에 몸을 사릴 만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체험학습 축소 움직임을 두고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뒤 7일 교육부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강석조 초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이 악성 민원을 언급하면서 울분을 터트리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우리 예쁜 학생들 사진 200장 찍어줬다. 그날 (학부모가) 무슨 민원을 넣었는지 아시나? ‘왜 우리 애는 5장만 나왔나요? 왜 우리 애 표정이 안 좋습니까? 이런 민원을 넣는다.” 강 위원장은 현장학습을 강제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소식을 듣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어 절망스럽다.

과거 우리는 남에게 폐 끼치는 행위를 극도로 경계하고, 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여 사는 일본 문화를 은근히 조롱하곤 했다. 하지만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경직성을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감도는 과민함의 기류는 ‘발전’이라는 이름의 문명화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묻게 한다.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최근 번역·출간된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 사회는 점점 더 쾌적해지는데, 사람들은 더 예민해지는가. 그는 사회가 ‘불쾌함 제거’를 지나치게 추구할 때, 타인에 대한 관용·인내도 함께 사라진다고 한다. 청결과 질서가 만연한 사회의 대가로 “비주류에게 일본 사회는 어디에서나 따가운 시선과 수상쩍은 눈초리를 감내해야만 하는 곳”이다. ‘쾌적함’이 배제·낙인·통제의 연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모습이 되감기되고 있다. 기차를 타건 공용 화장실에서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지시형 안내가 참 많다. 얼핏 개인의 자유와 공공공간을 존중하자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달리 보면 일상적인 ‘통제’다. 그러나 사회가 추구하는 질서가 정교해질수록 장애인이라서,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미래의 이곳에서 사람들은 통제에 따르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헉슬리는 조지 오웰이 보내온 책 <1984>를 받고 보낸 답장에서 “‘1984’의 악몽은 필연적으로 ‘멋진 신세계’와 훨씬 닮은 악몽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며 이 신세계의 종착지를 예고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1984’의 시절을 건너 헉슬리가 경고한 ‘멋진 신세계’ 입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전 국민이 감시자가 되어 이 사회가 통제돼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한국도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통제를 하려는 과민함을 삼가지 않으면 누구든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 우리 삶을 딱 응축한 드라마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믿는 구석이 있긴 하다. 마음먹으면 변화를 급격히 받아들이고, 행동에 주저함이 없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미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 대한 자성이 나오고 있어 다행이다. 남을 위해 이 사회의 불쾌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쾌적한 사회로 갈 수 있다. 내년 봄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응원 함성을 들었으면 좋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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