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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티어 자본주의

입력 2026.05.14 18:15

수정 2026.05.1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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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낙수 부장은 아들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한 달에 월세로 3000만원을 받는 건물주 친구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아빠가 걔 부러워할 거 같아? 그래봐야 백수거든, 백수.” 아들이 “건물주면 임대사업자잖아요. 그게 왜 백수예요?”라고 묻자 김 부장은 “불로소득으로 먹고사는 놈이 백수지, 그럼 뭐야?”라고 되묻는다. 허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김 부장은 퇴직금 전액을 부동산 사기범에 속아 상가에 투자했다가 날리고 만다. 상가 임대료로 월 1000만원을 버는 ‘월천낙수’가 되겠다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이 드라마가 공감을 얻은 것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망을 실감 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자산소득 축적은 한국인들의 지상목표가 됐다. 지난해 노동자 1인당 실질임금 인상률이 0.9%에 그친 반면 같은 기간 서울 송파·강남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20% 이상 올랐고, 코스피 지수는 14일(종가 기준) 연초 대비 85% 올랐다. 노동소득은 산술급수적, 자산소득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으니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든다. 부동산에 비해 진입장벽도 낮아 국민 4명 중 1명가량이 주식 투자자다. 한국 사회에서 ‘렌티어(rentier·자산소득자) 자본주의’가 바야흐로 만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산소득이 점점 성역처럼 간주된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 주식 양도소득세 정상화를 거론하는 정치인은 뭇매를 맞는다.

지난 12일 밤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로 경찰이 찾아왔다. 참여연대가 오는 20일 ‘반도체 초과이윤, 어떻게 나눌 것인가’ 좌담회를 열겠다고 공고하자 참석자를 “죽여버린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이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징후적 사건으로 읽힌다.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공장 앞에서는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개인투자자 단체의 집회도 열렸다. 주주행동주의가 노동소득 분배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움직임이다.

자산소득을 절대시한 나머지 배타성마저 보이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산소득에 거품이 끼고 부풀다 결국 터지는 ‘버블 붕괴’가 반복돼왔다. 자산소득을 절대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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