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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무익 경범죄처벌법

입력 2026.05.14 20:18

경범죄처벌법. 법 이름이 그 성격을 알려준다. 범죄는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공공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법으로 특별히 금지하는 행위다. 보통, 평범,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일만 처벌해야 하는데, 굳이 가벼운 범죄까지 찾아서 처벌하는 까닭이 뭘까? 답은 그 시작에서 찾을 수 있다. 1912년 조선총독부 ‘경찰범처벌규칙’이 시작이었다. 근대를 성취하고 제국이 되었다고 자부하던 일본은 조선을 그저 우매한 야만으로 취급했다. 조선인의 일상은 제국의 감시 대상이었고 처벌 대상이었다. 공포로 굴욕을 강요해 맘대로 다스리겠다는 수작이었다.

문제는 대한민국도 제국주의 일본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1954년 ‘경찰범처벌규칙’은 이름만 살짝 바꿔 ‘경범죄처벌법’이 됐다. 내용은 똑같았다. 그리고 70년 넘는 세월 동안 기껏해야 ‘굴뚝 관리 소홀’ ‘금연장소 흡연’ 정도만 빠졌을 뿐, 내내 요지부동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유지에 이바지”하는 것이라지만, 실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뿐이고, 질서유지에 이바지하는 것도 없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이 법에선 노상방뇨도 범죄다. “길, 공원, 그 밖에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또는 그렇게 하도록 시키거나 개 등 짐승을 끌고 와서 대변을 보게 하고 이를 치우지 아니한 사람”을 처벌한다. 야구장, 축구장에서 침을 뱉는 운동선수들, 화장실이 멀어 참기 어렵다는 어린아이에게 그냥 소변을 보라는 부모까지 이 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고 전과자가 될 수 있는 거다. 노상방뇨가 적절치 못한 일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질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는 아니다. 누군가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꽤 많은 사람이 노상방뇨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악법이 대개 그렇듯 단속 건수도 들쑥날쑥하다. 2023년엔 5669명이었지만 2024년에는 1만621명으로 갑자기 늘었다. 대통령이 질서를 강조하면 생기는 부작용이다. 실제로 2023년 3만7172건이던 ‘경범죄처벌법’ 단속 건수는 2024년 8만6118건으로 급증했다. 한 해 만에 2.3배가 늘어난 거다. 한국의 공공질서가 2024년에 갑자기 두 배 이상 엉망진창이 된 일은 결코 없었는데도 이렇다.

법률 자체가 국민을 윽박지르는 쓸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7만7138건이던 단속 건수가 이명박 정권 초기였던 2008년에 27만2749건으로 늘어난 것과 똑 닮았다. 이 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쓰레기 무단투기’도 그렇다. 2023년엔 2779건이었지만, 2024년에는 갑자기 3만6039건으로 늘어난다. 쓰레기 무단투기가 한 해 동안 13배가 늘었다.

윤석열 검사독재정권처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려는 정권이 들어서면 단속 건수는 늘어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국에서의 범죄가 대개 그렇듯 안정적으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경범죄처벌법’은 고작해야 독재정권이 쓰기 좋은 흉기에 불과한 거다.

경찰 입장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세계 최고 치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경찰관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노상방뇨, 쓰레기 무단투기나 쫓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선택·집중 원리에 따라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를 예방하고, 그런 범죄를 추적해야 하는 게 경찰의 몫이어야 한다.

호객·구걸행위, 무임승차, 무전취식, 광고물 무단부착 등도 마땅치 못한 질서 위반 행위는 맞지만, 굳이 형사처벌까지 해야 할 범죄일 수는 없다. 호객행위나 광고물 무단부착 등은 먹고살기 위한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형사처벌로 혼내줘야 할 범죄일 수는 없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경범죄처벌법’을 폐지하면 된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없을까? 혹시 길거리가 갑자기 노상방뇨, 호객행위, 구걸행위 등으로 무질서하게 된다면? 그럴 리 없지만, 이럴 때는 과태료 등 행정벌로 단속하면 된다. 벌금 10만원과 과태료 10만원은 똑같이 10만원을 빼앗긴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 형사처벌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진행한다는, 국가형벌권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원칙을 확인할 수 있고, 국민이 별것 아닌 일로 전과자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1912년처럼 아무 권리도 없는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하고 있다. 국민을 식민지 백성처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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