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늦다. 나는 영화를 너무 늦게 본다. 밤늦게도 보지만 개봉하고 10년도 더 된 폴란드 영화, <이다(IDA)>. 괄호 안에 철자가 없었더라면 ‘이다’를 그저 서술격 조사로 여길 뻔했다. 이다는 주인공 이름이다. 폴란드는 좋아하고 영화는 잘 모른다. 오늘은 그 잘 모르는 것 중에서 딱 한 장면들을 소환해본다.
수녀원에서 자란 이다는 수녀가 되기 위한 마지막 서원을 앞두고 있다. 전쟁에 희생된 부모님 무덤 행방을 찾아 이모와 떠난 여행. 이모도 가슴 깊숙이 묻어둔 아들을 찾는다. 가족을 짓눌렀던 비밀이 드러나고, 어떤 진실과 맞닥뜨리는 두 사람. 출중한 판사였고, 지독한 골초이자 술꾼인 이모가 붙잡고 있던 구름 너머로 연결된 끈도 끊기고 말았다. 허망했으나 그래도 희망이란 것을 가졌던 이모. 어느 아침, 숙취를 달래며 빵을 먹고, 목욕을 하고, 환기라도 시키려나, 창문을 열더니, 담배꽁초를 물고,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다가, 음악 볼륨을 높이더니, 안방을 가려나, 잠시 화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담뱃불을 끄고, 느닷없이,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가슴은 물론 등까지, 전부를, 공중에 훅, 일시에, 일거에, 하나도 남김없이, 돌연, 바깥에, 몸을 몽땅 빠지게 한다.
늦게 출판에 입문하고 전혀 다른 문화를 자맥질하던 시절. 천재감독이라 각광받던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은 입소문이 대단해서 안 보면 안 될 영화였다. 역시 영화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였다. 겨우 쥘리에트 비노슈만 각인하는 한편 한 장면을 선명히 기억에 남겼다. 센강 변의 노숙자, 어느 새벽 강변 벤치에서 부스스 일어나더니,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입구에 싫증 난 듯, 센강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평소의 보폭으로, 그대로 들어가, 무심히 몸을 물에 빠트린다. 악어가 누를 잡아먹고 입맛 다시듯, 물결 한번 일렁일 뿐 다시 잠잠한 센강. 우리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은 더 이상 그릴 그림이 없다는 듯, 아궁이 불구덩이 속으로 슉, 빠진다.
우리말에서 ‘빠지다’를 서술어로 거느리는 게 제법 있다. 잠이나 사랑은 물론 사람도 그렇다. 누구나 눈앞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가. 두 시간으로 압축한 영화처럼, 일생을 요약하면 뉘라서 현관에서 저 무덤으로 풍덩, 빠지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