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교육 의제의 위상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 한때 교육 의제는 선출직 후보와 정당들이 앞다투어 수용해야 할 ‘국민적 의제’였다. 그러나 교육은 이제 갈등 의제가 되었고, 득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감표의 위험을 지닌 ‘관리 대상’이 됐다고 느낀다.
이것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지난 10~20년간 혁신교육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공교육 정상화’는 눈에 띄게 진전됐다. 한때 ‘혁신’이라는 말과 ‘무상’이라는 말이 주던 설렘이 줄어든 이유도, 역설적으로 많은 것이 성취됐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에서 출발한 무상교육 흐름은 무상보육으로 확장됐고, 입학준비금 지원과 같은 정책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모두가 쉽게 공감하고 분노하던 ‘거대한 의제’들은 줄어들었다. 대신, 시민의 눈에는 작게 보이는 의제들이 학교 현장을 더 힘들게 만드는 상황이 나타났다. 교육 주체들 간의 이해관계 충돌, 집단화된 이익 갈등, 과도한 민원으로 인한 교사의 교육권 침해 같은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마르다. 교육지옥에서 아이들을 구출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고, 부모 배경과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교육은 아직 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육개혁의 시즌1이 저물고, 시즌2가 시작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시즌2를 힘 있게 열기 위해서는 교육 주체들 간의 진지한 소통과 새로운 합의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진보 내부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그 다원성을 넘어 합의를 만들어가려는 의지, 학부모와 시민의 상식 속으로 교육 의제를 스며들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두 개의 좋은 가치’ 접점을 찾기
시즌2를 열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관점 전환은 우리가 ‘단순성의 시대’를 지나 ‘복합성의 시대’로 들어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옳다고 믿는 하나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개혁의 방식이었다. 이제는 하나의 가치의 최대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좋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접점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민주화는 개인과 집단의 자유와 권리를 크게 확장시켰다. 그와 함께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도 함께 늘어났다. 2023년 7월의 서이초 사건이 보여주었듯, 권리가 악의적으로 사용되고, 학부모의 참여권에서 발원한 민원들이 교사의 교육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은 가정에서의 아동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학교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교사의 교육과 훈육에까지 적용되면서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다. 아동인권 관점에서는 그 확대가 필요했겠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다고 교직사회를 ‘정서적 학대의 완전 면책지대’로 설정할 수도 없다. 이 지점에서 교육계 스스로가 리더십을 가지고, 두 개의 좋은 가치가 만나는 접점을 찾기 위한 주도적 노력을 고민해야 한다.
수학여행, 야외체험학습, 운동회 기피와 같은 현상도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교사들이 이러한 활동을 꺼리게 되는 데에는 모든 안전관리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이른바 ‘독박 책임’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 구조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얼마 전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개선을 요구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미래의 학교와 교육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면서, 지금 문제가 되는 지점들과 그 원인에 대해 교육계가 더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런 방향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수학여행 등을 안 가는 수동적 응전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교육계가 약자의식만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는 없다.
‘학교 자치’ 시스템 대전환을
두 번째 관점 전환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지난 10년 동안 ‘학교업무 정상화’는 거의 모든 교육감의 핵심 정책이었다. 문제가 해결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예컨대 2014년 학교에 내려오는 공문이 하루 20건, 연간 약 8000건이었다. 이후 각종 사회 문제와 지자체 협조 공문 등이 더해지며 1만3000건으로 늘어났다. 정책사업 축소와 공문 감축 노력으로 5000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과정은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3000건이나 축소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5000건이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은 개별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자치를 실질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서 교육청을 거쳐 학교에 이르는 교육행정의 국가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지방분권에서 논의되는 바와 같은 ‘준(準)연방제형 개혁’이라는 관점에서의 시스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자치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시도교육청의 역할 분담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 관련된 권한을 과감히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시도교육청은 다시 학교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자치 심화형 교육행정체제 개편’의 방향이다. 이미 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이러한 방향의 법안 개정안이 교육감들의 합의로 마련된 바도 있다. 작은 하나의 예로, 예산의 일정 부분을 ‘학교자율예산’으로 법제화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교육지원청 역시 ‘행정 전달 기관’이 아니라, 학교의 공통 행정을 -오늘날의 디지털·AI 기술 혁명의 도구들을 적극 활용해- 종합 지원하는 복합행정지원센터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구조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과 여론이 들끓고, 국회와 교육청은 서둘러 법과 제도를 만든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규제와 또 다른 필수 교육 시간, 또 다른 공문으로 학교에 내려온다. 각각은 합리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로 보면 학교를 질식시키는 구조가 된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교육 의사결정의 거리를 학교 현장 가까이로 줄여야 한다. 분권은 권한 이양이기도 하지만, 갈등이 모두 국가로 집중되는 구조를 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교육이 그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