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향숙 행동중재 전문교사가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위한 교사의 역할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가방에 물을 붓는다. 친구를 발로 차고 때린다. 교사에게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마주하는 정서·행동 위기학생들의 모습이다.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공격성, 우울·불안 증상을 보이고 출석을 거부하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교사들의 생활지도 부담과 감정적 소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의사이듯, 정서·행동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지키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만난 황향숙 교사는 “진심으로 학생들을 돕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자주 한계에 부딪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24년 행동중재 전문교사 양성과정을 시작한다는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이 ‘동아줄’처럼 반가웠던 이유다. 행동중재의 핵심인 긍정적 행동지원(PBS·Positive Behavior Support)이 “그저 버티기만 했던” 그와 동료 교사들에게 하나의 답을 내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PBS는 문제행동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위기학생과 교실을 함께 변화시키는 일련의 교육 절차를 의미한다. 서울시교육청은 PBS를 전담 수행하는 행동중재 전문교사 양성과정을 2024년부터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3개 기수 총 25명의 전문교사가 참여해 실제 학교 현장에 PBS를 적용하고 있다. 황 교사는 1기 전문교사로, 2024년 2학기부터 가재울초의 학교 차원 PBS를 이끌어왔다.
황 교사는 정서·행동적 위기를 겪는 학생들이 최근 교실에서 유의미하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통 한 반에 5~6명 정도라 담임교사 1명이 혼자 맡기엔 버거운 수준”이라며 “공격적 행동도 시급한 문제지만, 당장은 티 나지 않더라도 자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울·불안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황향숙 행동중재 전문교사가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위한 교사의 역할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교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위기학생의 증가 자체가 아닌 이를 감당할 시스템의 부족이다. 황 교사는 “위기학생이 늘어난 것도 맞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지도할 교사의 권한과 지원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교사들끼리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버티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황 교사가 시도 중인 PBS는 ‘버티기’ 대신 ‘변화’의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기존 훈육 방식이 문제행동 이후 사후 지도에 집중됐다면, PBS는 그 행동이 왜 나타났는지 원인과 맥락부터 분석해 학생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학생이 수업 중 학습지를 찢었다면 단순 반항으로만 보지 않는다. 관심을 받고 싶은 건지, 과제를 회피하려는 건지, 불안 때문인지를 먼저 살핀다. 행동중재 전문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의 행동중재전문관과 협력해 학생 행동을 장시간 관찰하며 선행 상황(A), 문제 행동(B), 결과(C)를 분석하는 ‘ABC 관찰’을 진행한다.
황 교사는 “문제행동의 빈도와 강도, 지속시간 등을 시간대별로 측정해 데이터화하고, 행동의 배경·촉발사건을 파악한 뒤 각 학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에 맞는 지원 계획을 수립해간다”고 말했다. 학생이 학습지를 찢는 이유가 관심 때문이라면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대체 행동을 유도하는 식이다. 그는 “이후의 행동 변화 역시 정량 평가로 데이터화해 학부모와 함께 확인한다는 점에서 정성 평가 중심의 기존 훈육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 차원 PBS는 특정 학생만을 위한 개별 중재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제행동을 예방하고 긍정적 순환을 이끌어내는 학교 문화를 만드는 것도 핵심이다. 황 교사의 지도로 가재울초 학생들은 ‘존중·안전·책임’이라는 가치 아래 학교 규칙을 직접 만들었다. 학생들이 포스트잇과 스티커 활동으로 의견을 모아 만든 규칙은 ‘웃어른께 인사하기’ ‘걸어서 이동하기’ ‘머문 자리 정리하기’ 등이었다.
학교는 이후 학생 실천 결과를 영상과 데이터로 제작해 반복적으로 공유했다. 황 교사는 “PBS는 아이들이 실제로 실천하고 긍정적 강화 경험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PBS는 위기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악성 민원에서 담임교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황 교사는 “문제행동에 대해 학부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건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라며 “학교가 먼저 전문적인 지원 계획을 설명하면 반응이 훨씬 부드러워진다”고 말했다.
행동중재 전문교사뿐 아니라 담임교사와 상담교사, 수석교사 등이 팀을 꾸려 지원하는 방식인 점도 한몫했다. 황 교사는 “여러 교사들이 팀 단위로 문제행동을 판단하고 중재하기 때문에 이 구조 자체가 담임교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차원 PBS는 이제 막 시작단계다. 서울시교육청의 행동중재 전문교사 양성과정은 현재 3년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후 이들 교사가 학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대안은 아직 논의 단계다. 각 시도교육청에 개별적인 양성과정만 설치되고 있을 뿐, 제도적으로 PBS가 자리 잡은 상황도 아니다.
황 교사는 “아이들을 용감하게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려면 PBS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교사가 더 필요하고 전문성도 더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학교 현장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 황 교사는 “아직까진 위기학생의 절반 정도에서 개선이 나타난 정도지만 학교 차원에서 ‘해볼 만한 여지’를 발견했다는 데 우선 의의를 두고 싶다”면서 “학생 곁에 남고 싶어 하는 교사들이 끝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제도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