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7일 ‘상무충정작전’ 수행한 부대 명칭
경향신문 조사, 공공기관·시설 38곳에 쓰여
1980년 5월26일 계엄사령부가 광주 지역 계엄군을 지휘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상무대)에 ‘상무충정작전’(붉은색 테두리) 시행을 지사하는 문건. 5·18진상규명위 자료집.
호남선 KTX가 서는 광주의 관문 ‘광주송정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2만여 명에 달한다. 역 앞 왕복 8차선 도로는 광주 도심으로 연결된다. 12㎞ 길이 도로 동쪽 끝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무장한 계엄군에 맞섰던 ‘금남로’에 닿는다. 이 도로 이름은 2009년 ‘상무대로’로 지정됐다.
‘상무’는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계엄군 최후 진압작전 ‘상무충정작전’(尙武忠正作戰)에서의 ‘상무’와 같다. 상무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을 지휘했던 군부대 ‘상무대’(尙武臺)에서 따온 말이다. 공수부대가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계엄군 작전이 46년 지난 지금, ‘민주·인권·평화’ 도시를 표방하는 광주를 관통하는 도로 이름으로 박힌 것이다.
14일 경향신문 전수조사 결과, 광주에서 계엄군 진압작전과 지휘했던 군부대 명칭이었던 ‘상무’(尙武)라는 이름을 쓰는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은 총 38곳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가 5곳, 행정기관 6곳, 공공시설 4곳, 공원 2곳, 교통 관련 4곳, 도로명 13곳, 교량 1곳, 교차로 3곳 등이다.
‘무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의 ‘상무대’는 1980년 광주 서구 치평동 일대에 주둔했던 육군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별칭이었다. 5·18 당시에는 ‘비상계엄’ 조치로 신군부가 설치한 ‘전남북계엄분소’를 맡았다.
상무대는 ‘계엄사령부(육군본부)→2군사령부→계엄분소(전교사)’로 이어지는 계엄군 지휘 계통에서 광주에 투입된 3개 공수부대와 20사단, 31사단 등의 작전 통제권을 갖고 있었다.
1980년 5월26일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전교사에 ‘육군본부 작전지침’을 하달하며 옛 전남도청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전교사령관 책임하에 도청 진압 작전을 하도록 지시하는 이 문건에서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했다.
김희송 전남대5·18연구소 교수는 “당시 군이 민간인 소요 진압에 투입되는 것을 ‘충정작전’이라고 했다. 상무충정작전은 ‘상무대가 주도하는 진압 작전’ 이라는 뜻”이라며 “‘상무’라는 이름이 광주시민을 학살한 계엄군 작전명이었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밝혔다.
상무대는 1994년 전남 장성으로 부대 전체가 이전했다. 군부대가 떠난 지 32년이 지났지만, 광주 도심 곳곳에는 지금도 ‘상무’라는 이름이 생겨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 중 군부대 명칭을 공공시설과 공공기관 이름에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