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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돼지

입력 2026.05.17 20:00

수정 2026.05.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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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과대학 3학년, 대동물 내과학 마지막 시간은 농장 견학이었다. 같은 조 다섯 명이 탄 자동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 시간을 달렸다. 국도를 지나 밭 사이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길 끝에 서너개의 건물이 보여 창문을 내리자 뜨거운 공기와 햇살에 실린 분뇨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곳은 무창 돈사, 개방식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를 해결하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환풍 시설로 모든 돈사의 악취를 중앙 집중식으로 걸러내는 곳이었다. 농장 관계자는 당시 무창 돈사가 최근에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선진 축사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직사각형 축사는 창이 없어서 언뜻 보면 지붕에 큰 환풍기가 달린 창고나 공장 같았다.

멸균복과 덧신 착용 후 일렬로 돈사 안으로 들어갔다. 앞선 조원들이 차례대로 기침을 했다. 눈이 따갑고 화끈거렸다. 넘어질 것 같아서 억지로 눈을 뜨니 눈물이 흘렀다. 숨을 들이쉬자 기침이 터져나왔다. 진하게 농축된 매캐한 암모니아 냄새였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의 양옆을 따라 2평가량 되는 작은 돈사들이 반대쪽 출입문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15㎏ 정도 돼보이는 수많은 돼지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들 몸에는 거무스름한 분변이 묻어 있었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는 우리와 달리 돼지들은 침착해 보였다. 천장의 거대한 환풍기 소음 때문에 돼지들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행렬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눈들이 우리를 따라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때 엎드려 있던 한 돼지가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왔다. 덧신을 신은 내 발에 코를 가까이 댔다. 살아있는 돼지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둥그런 코는 부드럽고 촉촉했다. 코를 이루는 가장자리 피부는 작은 주름을 이루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새로운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고 있었다. 산책로에서 처음 보는 개가 다가오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릎을 구부렸다. 그때 조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돼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앞으로 이동하라는 말이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앞사람을 따라 걸어갔다. 뒤를 돌아볼 여력은 없었다.

축사 밖으로 나온 우리는 모두 캑캑댔고 흘러나온 눈물과 콧물을 닦느라 바빴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돼지 폐렴들이 떠올랐다. 돼지들이 호흡기 질병에 쉽게 걸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탈출해 나온 축사 밖은 환했고 따뜻한 바람은 부드러웠다. 저 안의 돼지들은 평생 모를 햇볕과 바람이었다. 방금 그곳을 통과했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역 마스크 구해서 쓰고 오는 건데. 우리 숨도 못 쉬고 죽을 뻔했잖아요.” 운전 담당 선배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 오늘 힘들었으니까, 저녁은 삼겹살 어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차 안은 조용했다.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삼겹살을 제안한 선배는 머쓱해서 “싫으면 말고” 하고 침묵했다. 내 발치에 와서 냄새를 맡던 돼지가 생각나서 눈을 감았다. 이후 내 삶은 꽤 바뀌었고, 그 변화는 되돌리기 어려웠다. 돼지고기를 보면 살아있는 돼지가 생각나게 된 것이다.

허은주 수의사

허은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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