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이 사회적 논란거리지만 성과급 논란의 원조는 은행권이다. 은행의 ‘성과급 잔치’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거론됐다. 근래엔 부동산 호황기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손쉽게 ‘이자’ 받아가며 돈을 번다는 비판이 컸다. 최근 은행권에선 실적 발표 이후 ‘사상 최대 이익’이라는 보도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지난 12일 보도한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 문제는 금융권이 손쉽게 돈을 벌었던 ‘파이프라인’ 중 하나였다.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 복잡한 이 단어에서 중요한 건 ‘유동화’라는 개념이다.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걸 말한다. 상록수라는 특수목적법인은 은행과 카드사가 갖고 있던 오래 연체된 채권을 한 곳에 모으고 이를 할인된 가격으로 사들였다. 당시 은행과 카드사들은 연체 채권을 2003년 상록수에 넘길 때 장부상 손실 처리했을 것이다.
한시적 목적으로 운영된 ‘유한회사’는 20년 넘게 이어졌다. 은행과 카드사, 대부업체로 구성된 상록수는 ‘유동화된 채권’을 들고 빚 독촉을 계속했다.
성과급 논란 원조는 은행권
복잡한 체계 뒤에 숨은 탐욕
금융당국은 감시 역할 소홀
회복과 재기 돕는 것이 금융
받지 못할 돈은 의외로 조금씩 돌아왔다. 상록수의 5년간 후순위채 상환금액은 800억원에 육박했다. ‘죽었다고 생각한’ 채권이 현금 800억원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다. 배당금도 나왔다. 5년간 이들 9개 주주사들은 420억원을 받아갔다. 대형 금융사 입장에서 큰돈은 아니었겠지만 일종의 ‘쌈짓돈’으로 여겼을 것이다. 취재 기자는 “그들에게 배당금은 보너스였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정부가 지난해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장기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으로 묶어 채무 조정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상록수는 제외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록수는 민간 배드뱅크라는 이름으로 금융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다. 스스로 손쉽게 돈을 벌어다주는 파이프라인을 잘라낼 필요가 없었다. 정관상 9곳의 주주가 모두 찬성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도 은행과 카드사들이 숨기 좋은 환경이었다. 경향신문이 만난 연체자들은 ‘상록수 빚’이 죽은 후에야 없어질 것이라는 자조적 목소리를 들려줬다. 희망의 단어 상록수가 절망으로 변한 순간이다.
상록수를 보면서 놀라운 건 ‘관치금융’이 강한 한국 금융권에서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을까 하는 점이다. 답은 복잡성에 있다. 연체 채권은 몇단계를 거쳐 유동화해서 넘기다보니 단일 금융사에선 드러나지 않는 숫자였다. 상록수 자체가 상장사도 아니었다. 상록수의 한 주주는 새도약기금으로 넘길 의사가 있었지만 다른 곳들은 미적댔다. 경향신문 보도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상록수 채권 추심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탐욕은 노골적 형태로 찾아오지 않는다.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의 복잡성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책임을 숨기는 장막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포용금융을 강조해왔지만 상록수의 추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금융사들이 단박에 ‘채권 매각’이라는 백기를 들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간 금융당국에 적극적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몇차례 유동화를 거치며 어느 특수목적법인에 얼마의 장기 연체 채권이 남아 있는지 이제라도 금융당국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라는 복합명사의 첫 단어 ‘상록수’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회복’ ‘희망’이라는 상징성을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록수> 주인공 동혁은 영신의 죽음에도 농촌 계몽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이렇게 끝맺는다.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금융은 원래 돈을 빌려주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산업이다. 20년 묵은빚을 끝까지 좇아 돈을 버는 행태는 금융의 역할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돕는 것, 그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임지선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