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장안의 화제다. 극중 영화판에 널린 찌질한 군상 가운데 예외적으로 어른의 품격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으니, 고박필름 대표 고혜진이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든 이유는 기자 생활에 질렸기 때문이다. 기삿거리를 찾던 중, 뉴스를 만들려면 약자의 절통한 슬픔마저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장의 함축된 지시를 듣고, “이딴 거 안 할 거라고, 이 ○○ 새끼야”라고 응수하고 언론을 떠났다.
기자의 숙명은 뭔가를 써야 한다는 데 있다. 지면을 채우고, 편성된 시간을 메꾸고, 회기를 지켜 동영상을 올리려면 정말이지 뭐라도 써야 한다. 기삿거리가 없는 기자란 양파 없는 짜장면집이요, 감초 없는 약방이다. 꾸역꾸역 뭐라도 쓸 수는 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사고를 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언론이란 직역에서는 기삿거리가 마르거나 넘치는 때를 알고, 딱 봐서 뉴스가 될지 말지 알면 팀장이 되고 국장도 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뉴스가 되는가? <고양이 대학살> 책으로 유명한 로버트 단턴이란 분이 있다.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로 일가를 이루었고 하버드대 도서관장으로 혁혁한 공적을 남긴 그도 한때는 기자였다. 그가 기자 생활을 정리해서 쓴 ‘기사쓰기와 이야기하기’란 논문이 ‘디덜러스’라는 고명한 학술지에 담겨 있다. 그 논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갓 20세가 된 단턴은 뉴어크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며 몇편의 기사를 썼지만, 아직 기명기사는 못 쓰고 있었다. 어느 날 출입 경찰서에서 본 뻔한 자전거 도난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고, 그는 연습 삼아 네 문단짜리 초고를 작성해서 선배에게 보였다. 초고를 본 선배는 ‘그렇게 보도자료처럼 쓰면 곤란하지’라며 몇분 만에 그것을 아버지와 아들 간 훈훈한 이야기에 도시 범죄에 대한 경계를 덧붙인 기사로 가공해 내는 묘기를 부렸다. 단턴은 선배가 작성한 뉴스의 세부사항 몇가지를 전화로 확인해서 보완한 뒤, 편집부로 기사를 넘겼는데, 그게 그의 첫 번째 기명기사가 됐다.
단턴은 나중에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 자전거 도난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렸다고. 그는 특히 기자들이 떼로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취재하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오래된 ‘원형 이야기’에서 나온 변형들처럼 보였다고. 사건을 보자마자 뉴스가 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능력이 기자의 진짜 역량이다. 언론학자들은 이런 일이 일종의 유형화(typification)를 통해 일어난다고 본다.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뉴스에 맞는 유형인지 아닌지 빠르게 확인해서, 전형적인 이야기로 구성해 낸다. 언론이란 사건을 이야기로 가공해 내는 사업이란 뜻이다.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선거구별로 대진표가 나오자마자 백색선전, 흑색선전,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회색선전이 난무한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는 돌보지 않고, 경쟁 후보의 무가치함을 입증하려 싸우고 있다. 선거철에 채워야 할 지면과 시간이 많아졌다는 듯 기자들도 애쓴다. 그러나 애씀이 지나친 탓인가, 이것도 뉴스인가 싶은 기사도 보인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일 뿐인 후보가 당내 정치질에 능숙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받아 캠페인 중이라면, 그런 후보의 자질을 폭로하는 인터뷰 기사는 유용하다. 유능하고 기민하다고 소문난 정치인이 알고 보니 부패를 감추고 패거리를 관리하는 데 뛰어났기에 그렇게 알려졌다면, 그 소문의 진상을 까발리는 탐사 기사도 소중하다. 후보의 무능함과 부패를 검토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투표에 나선 유권자야말로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거라도 써야지 싶어서 나온 기사는 유권자에게는 물론, 애초에 그런 이야기도 안 되는 기사를 써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던 기자에게 얼마나 무가치했을까 싶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