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예술가들의 교류 조망하는 ‘로드 무비’전
미술가 43팀 작품 200여점 소개
국립현대 과천서 9월까지 열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는 나카무라 마사토의 ‘한국과 일본’(1993)(위)과 구보타 시게코의 ‘브로큰 다이어리: 한국 여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7년 일본 도쿄예대 대학원생 나카무라 마사토는 여행차 한국을 방문한다. 당시 고낙범, 이불, 최정화 등이 참여한 ‘뮤지엄(MUSEUM)’ 그룹전을 보게 된 그는 한국 작가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홍익대 대학원으로 온 그는 1992년 도쿄예대 동창이던 무라카미 다카시를 한국으로 초대해 서울의 클럽 오존에서 ‘나까무라와 무라까미전’을 개최했다. 당시 서울의 20~30대에게 일본 이름을 제시하고 불쾌한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달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1위 나카무라, 2위 무라카미. 일제 순사를 연상시켰기 때문일까, 이들은 한국 체류 중 일본인 이름이 불쾌감을 주는 이유를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 전시는 도쿄와 오사카로 이어지며 동시대 한·일 청년 작가들의 만남을 촉발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일 예술가들의 교류를 조망하는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이 오는 9월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1945년 이후 80년의 교류사를 되짚는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 상황 속에서 교류를 이어온 미술가 43명(팀)의 작품 200여점을 소개한다.
‘로드 무비’처럼 만남을 흥미롭게 포착하는 것은 교류가 일상으로 확장되던 1990년대다. 나카무라의 ‘한국과 일본’은 일기예보 지도에 함께 놓인 두 나라를 통해 서로 불편해도 같은 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를 작가는 ‘밝은 절망’이라 부른다. 전시를 공동 주최하는 요코하마미술관 구라야 미카 관장은 “일본 전시 제목은 ‘항상 옆에 있으니까’였는데,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오히려 싸우기도 하는 양국 관계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는 나카무라 마사토의 ‘한국과 일본’(1993)(위)과 구보타 시게코의 ‘브로큰 다이어리: 한국 여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역시 나카무라가 찍은 이불의 스튜디오 사진에는 초기 소프트 조각이 담겼다. 이불은 1990년 일본에서 행위예술 ‘수난유감’과 ‘사이보그’ 연작 등을 통해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무라카미가 ‘슈퍼플랫’ 개념을 제시하기 이전 사회 비판적 초기작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희귀 동물 가죽으로 초등학생 란도셀 가방을 만들어 자본주의와 교육 시스템의 권력구조를 비판한 ‘R.P.(란도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해지기까지, 한·일 미술은 식민과 분단의 굴곡을 지나며 길을 넓혀왔다. 전시는 광복 이후 일본에 남아 활동한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에서 출발해, 두 나라를 잇는 상징적 존재였던 백남준, 국교 정상화 이후 본격화된 흐름을 작품·자료로 소개한다.
한국에 일본은 마냥 편한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서로의 역사적 문제와 고통을 마주하는 작품들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의 끝에서 이를 붙드는 작품이 다나카 고키의 영상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이다. 과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오늘의 혐오를 교차시키며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묻는다. ‘로드 무비’는 그 물음에서 다시 현재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