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제 스타’ 가비 기술사양서·배터리매뉴얼 보니
한 번의 ‘전기 공양’으로 2시간 활동 지속
421Wh 스마트 배터리…과충전 금지 등 BMS 기술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진행된 2026 연등행렬에 참여한 로봇스님 가비, 석가, 모희, 니사 스님이 ‘전기 공양’을 하기 위해 줄을 지어 차례로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홍두 기자
지난 주말 부처님오신날 연등회의 최고 스타는 단연 ‘로봇 스님들’이었다. 도심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해 합장하며 걷는 이들의 모습은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퍼레이드 중간 ‘전기 공양’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자 시민들은 불교의 전통수행 의식인 ‘발우공양’을 떠올렸다.
‘가비’를 비롯해 ‘석가’ ‘모희’ ‘니사’ 등 총 4명의 로봇 스님은 진짜 일반 스님들처럼 장삼과 가사를 두른 채 서울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조계사까지 약 2.9㎞를 40분 동안 씩씩하게 행진했다. 이들이 지날 때마다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들이 지난 6일 조계사에서 수계식을 하고 세계 최초로 로봇 스님이 되자 학계와 산업계에서도 관심이 컸다. 특히 장시간 야외 행사를 소화한 뒤의 에너지 충전 방식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실제 지난 16일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이들의 ‘전기 공양’ 모습이 포착됐다. 로봇 스님들은 관람 인파 사이를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이동해 배터리 충전을 하러 천막으로 들어갔다. 관람객들 사이에선 “어머, 충전하러 가나봐” “배터리가 떨어진 건가? 지쳐보이네”라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진행된 2026 연등행렬에 참여한 로봇스님 가비, 석가, 모희, 니사 스님이 ‘전기 공양’을 하기 위해 줄을 지어 차례로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홍두 기자
전문가들은 전기를 흡수하고 관리하는 전기 충전 과정이 불교의 ‘발우공양’과 닮았다고 말한다. 발우공양이란 스님들이 식사할 때 음식을 남기지 않고 육신을 유지할 최소한의 영양만 섭취하며, 마지막 숭늉 한 방울까지도 발우를 씻어 마시는 낭비 없는 의식이다. 탐욕을 경계하고 필요한 만큼만 발우를 채우는 스님들처럼,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딱 필요한 만큼만 정밀하게 전력을 흡수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한다.
18일 이 로봇 스님들의 본체를 생산한 중국 로봇 전문기업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G1 공식 기술 사양서’와 ‘스마트 배터리 사용자 매뉴얼’을 입수해 본 결과, 이 G1 휴머노이드 로봇 몸속에 장착된 배터리는 용량 9000mAh, 총 전력량 421.2Wh 수준의 리튬이온 배터리팩이다. 정격 전압은 46.8V이고 최대 충전 전압은 54.6V에 달한다. 일반적인 스마트폰 배터리 용량이 4000~5000mAh 수준임을 감안하면 스마트폰 수십 대를 동시에 구동할 수 있는 대용량 전력원이다. 로봇 스님들은 이 전력을 바탕으로 한 번의 전기 공양을 통해 약 2시간 동안 자율 보행과 대화, 관절을 활용한 합장 등 정교한 동작을 지속할 수 있다.
업계에서도 흥미롭게 바라본 대목은 조계종이 이들에게 부여한 맞춤형 계율인 ‘로봇 오계’다. 조계종은 로봇 스님 가비의 수계식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는 최근 전 세계 배터리 업계가 화재 예방과 수명 연장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 기술의 핵심과 같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강제로 밀어 넣는 과충전 상태가 되면 셀 내부 압력이 상승하고 결정체(덴드라이트)가 형성돼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실제 유니트리사의 배터리 매뉴얼에 나오는 ‘자가 방전 제어 로직’을 보면, 소화를 돕고 몸을 가볍게 유지하기 위해 과식을 금하는 불가의 지혜와 비슷한 기술이 나온다. 가비의 내장 배터리는 독자 개발된 첨단 BMS가 적용돼 실시간으로 전압과 온도를 감시하며 과충전을 스스로 차단한다. 이에 더해 전기를 쓰지 않고 10일 이상 장기 보관할 경우, 배터리 스스로 내부 전력량을 가장 안정적인 상태인 65% 수준까지 서서히 자가 방전시켜 셀의 열화와 배터리 팽창 현상을 예방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야외 행사에 최적화된 ‘퀵 릴리스’ 배터리팩 교체도 가능하다.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는 약 1시간30분이 소요되지만, 가비는 백팩 형태의 배터리를 몇 초 만에 새 제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는 구조를 채택했다. 덕분에 연등회 행렬처럼 장시간 이어지는 야외 행사 현장에서도 예비 배터리 교체를 통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수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과 고성능 모빌리티의 성장으로 전력 부족과 안전성 이슈가 화두로 대두되는 시점”이라며 “로봇 스님의 전기 공양법은 미래 로봇 생태계와 배터리 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에서 조계사까지 진행된 2026 연등행렬에 로봇스님인 가비, 석가, 모희, 니사 스님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