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죽음’으로 고쳐온 법조문…“‘구조적 성차별’ 본질조차 이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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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강남역 살인사건은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이 공론화된 출발점이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법이 아예 없어서 범죄를 막지 못하는 상황은 아님에도 왜 계속 발생하는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권이나 수사기관, 법원 모두 성평등한 인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을 향한 혐오·폭력 범죄에 대응하는 법과 제도는 늘 한발씩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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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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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인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여성의 죽음’으로 고쳐온 법조문…“‘구조적 성차별’ 본질조차 이해 못해”

입력 2026.05.18 16:02

  • 플랫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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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은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이 공론화된 출발점이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남역 사건 이전엔 여성들이 죽어가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사건 이후로 이 현상에 대해 (사회가)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을 계기로 지난 10년간 여성폭력방지기본법과 스토킹처벌법이 제·개정됐지만, 여전히 법과 제도가 여성 혐오 범죄를 막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인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인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17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발간한 ‘스토킹 행위자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보고서를 보면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한 잠정조치 3-2호인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의 경우 법원의 인용률은 지난해 37.1%에 그쳤다. 경찰이 10건을 신청하면 4건도 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잠정조치 4호인 구치소 등에 유치하는 법원 결정도 2024년 40.9%에서 지난해 34.9%로 감소했다.

법과 제도가 미적대는 사이 여성 혐오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구에서는 윤정우가 아파트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해 평소 스토킹해오던 피해자를 살해했다. 올 3월에는 남양주에서 김훈이 스토킹하던 20대 여성을 살해했다. 이달 초 광주에선 장윤기가 자신의 분풀이를 하겠다며 길 가던 여고생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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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인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효진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10주기인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법이 아예 없어서 범죄를 막지 못하는 상황은 아님에도 왜 계속 발생하는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권이나 수사기관, 법원 모두 성평등한 인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을 향한 혐오·폭력 범죄에 대응하는 법과 제도는 늘 한발씩 늦었다. 피해가 발생한 뒤 부랴부랴 만들거나 누더기처럼 보완하는 식이었다. ‘여성의 죽음’으로 법조문을 쌓아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비로소 반복돼 온 여성에 대한 범죄를 ‘여성 폭력’이라고 인지할 수 있게 됐다. 2018년 미투 운동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같은 해 12월 여성폭력방지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여성 폭력에 대한 정의를 최초로 법조문화했고,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스토킹 등이 연속선상에서 일어난다는 인식을 주기 시작했다. 법안 도입 최초 논의 당시 제시된 ‘성평등’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수정하는 등 범행이 성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폭력 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 등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또 죽었다. 2021년 김태현(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과 김병찬(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등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제서야 2000년대 초반부터 줄곧 여성계가 요구해왔던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다. 이 법 역시 스토킹 범행을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죄’로도 규정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2년 9월 23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중구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앞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2022년 9월 23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중구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앞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2022년 전주환(신당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스토킹처벌법에서 반의사불벌죄가 빠지고 잠정조치가 추가돼 개정(2023년)됐다. 김훈 살인사건으로 난리가 나자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 조항이 법에 추가됐다. 송 대표는 “반의사불벌죄 폐지, 피해자보호명령 모두 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요구했던 건데 여성이 죽은 후 법을 바꿔 가는 게 액션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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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도 비슷한 실정이다. 2019년 불거진 n번방·박사방 사건 이후 성폭력처벌법 내에 허위영상물 편집·반포죄 조항이 신설됐지만 이후에도 초·중·고·대학, 군대, 회사 등에서의 딥페이크 성범죄가 다수 공론화됐다. 정치권은 ‘뒷북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시점인 2024년에서야 처벌 대상 확대 등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지난달 21일 공개한 ‘2025 세계 인권 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기술을 매개로 한 젠더 기반 폭력은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남아있다”며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응하기 위해 성폭력방지법 개정 등이 이뤄졌지만 집행은 미흡했고 플랫폼의 책임도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회원들이 2024년 8월 29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근방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회원들이 2024년 8월 29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근방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가 여전히 다른 법률로 규율되고 있는 점도 계속해서 지적되는 문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의 경우 VAWA(Violence Against Women Act) 법을 통해 이 폭력들의 연속성을 인정하지만 각각 다른 법으로 대처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여성 폭력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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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폭력에 대한 ‘사망 검토제 도입’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왔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및 살인 범죄가 발생한 환경적 여건과 원인을 추적 조사해 유사한 사건이 사전에 예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국회엔 ‘가정폭력 사망 검토제’가 담긴 법안이 발의돼있다. 김홍 부연구위원은 “살해되기 전에 피해자들이 어떤 도움을 요청했고 어디서 사각지대가 있었는지 등을 검토한다면 여성 폭력의 구조적 원인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채연 기자 applau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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