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국회 앞에서 반올림 등 주최로 ‘고(故) 황유미 19주기 및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입법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파업 직전 마지막 협상에 돌입한 상황에서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반도체 초과수익은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배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급 논의를 단순한 이익 배분을 넘어 반도체 산업 전반의 노동·안전 문제로 확장하자는 취지다.
반올림은 18일 성명을 내고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반도체 초호황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이 있었다”며 “삼성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직업병 예방을 위해 투자할 적기”라고 밝혔다.
반올림은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시민단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제기하며 산업재해 신청과 피해 구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2019년 정부 역학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포함한 6개 반도체 회사에서 암에 걸린 노동자가 3442명이고 이 중 1178명이 사망했다. 피해자 절반이 삼성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독성화학물질 공급이나 설비 유지·보수 같은 고위험 업무 상당수를 하청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며 “가장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가장 적은 보상을 받고 가장 먼저 버려지는 불안정한 처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를 만들다 직업병에 걸린 피해 노동자들을 위해 성과를 나눠야 한다”며 직업병 지원보상제도 확대 개편을 요구했다.
2018년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중재협약에 따라 운영 중인 직업병 지원보상제도는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부문 임직원과 사내 상주 협력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원 대상 질환은 백혈병·뇌종양·폐암 등 일부 암과 희귀질환, 유산·사산 등 생식질환, 선천성 기형·소아암 등 자녀질환이다. 암은 만 65세 이전이면서 퇴직 후 10~15년 이내, 희귀질환은 퇴직 후 5년 이내 발병한 경우만 지원한다.
반올림은 새롭게 확인된 질병 유형과 발병 시기를 반영하고,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로 지원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 금지·규제 제도를 확대하고 작업환경 개선 투자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반도체 공장 안에서 함께 일하는 장비업체 노동자들도 많은데, 이런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학계도 노사 협상이 성과급 규모에만 집중되면서 직업병 예방 논의는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삼성전자에서는 산재와 직업병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며 “노조가 안전 설비 투자나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선제적으로 요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성과급에만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