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 세계경영전략의 책사로 꼽힌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펴낸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체스판에 비유하며 소련 붕괴 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어떻게 헤게모니를 유지할지 훈수를 둔다. 그때만 해도 중국의 굴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브레진스키는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아마도 이란이 합세한 거대한 동맹이 형성되는 일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를 열강의 체스판에 비유하는 건 다른 나라는 체스판의 말과 같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런 나라들이 열강의 세계전략 변화나 거래의 제물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교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이 한 예다. 미국이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잠재력이 큰 중국 시장 진출과 소련 견제 목적으로 1979년 1월1일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중국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과의 국교를 공식 단절했다. 미국·대만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도 받아들였다.
대신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지역 국민’과의 교류·협력을 이어왔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2년에는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에 있어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 등을 담은 ‘6개 보장’을 발표했고, 여기에 근거해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해왔다. 대만에 110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하는 법안은 지난해 미국 의회 승인을 거쳐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서명만 남은 상태다. 의회에는 140억달러 규모의 다른 무기 판매 법안도 계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뒤 대만 무기 판매를 대중국 협상 카드로 사용할 뜻을 밝혀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건 우리에게 매우 좋은 협상 칩”이라고 했다. ‘6대 보장’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는 “그래서 어쩌란 것인가”라고 했다. 미·중 간 갈등 격화를 막으려는 ‘냉랭한 평화’ 모색, 트럼프식 ‘거래적 동맹관’을 보여준다. 이 비정한 국제정치 현실을 한국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