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모든 복잡한 감정과 개념이 한 단어로 존재한다는 독일어 단어 설명을 보며 즐거워했던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고향이 아닌 다른 먼 곳을 그리워하며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Fernweh’라 하고, ‘타인의 불행이나 불운을 보고 느끼는 기쁨’은 ‘Schadenfreude’라 한다. 종종 내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 설명되지 않던 마음을 함축된 한 단어로 만날 때면 ‘아하!’ 하고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최근 새로 마주한 ‘아하!’ 단어는 ‘Rage bait’다. 직역하자면 ‘분노-미끼’인데, 의도적으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제작해 시청자들의 강렬한 반응을 끌어낼 때 쓰인다. 이 행태가 어찌나 만연해 있는지, 2025년에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올해의 단어로 ‘분노-미끼’를 선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순히 시청을 유도하는 것을 넘어 어떤 콘텐츠들은 우리의 감정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댓글, 공유수, 좋아요 같은 인터랙션의 증가가 곧 알고리즘의 선택을 의미하는 지금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이상 피드백의 질이나 긍정적 시청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많이 보고 많이 쓰면 조회수가 오른다. 조회수는 곧 돈이다.
장애 정체성을 기반으로 창작하는 콘텐츠 제작자로서는 너무나 소진되기 쉬운 환경이다. 장애가 좋은 ‘Bait(미끼)’가 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우리는 남들과 다른 개성으로 콘텐츠 시장에서 강한 ‘훅(Hook)’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고 강의하곤 하는 나이지만, 미디어 장애 재현은 장애 당사자의 주체성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방향만으로 흐르진 않는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장애는 ‘분노-미끼’에 특화된 소재인가. 시각장애인에게 일부러 적은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편의점 알바, 지적장애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행인 등의 ‘사회실험’ 영상은 늘 인기가 많았다. 휠체어 이용자의 진료를 거부한 산부인과나 뇌병변 장애인의 입장을 거부한 결혼식장의 뉴스 보도는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공백보다 분노를 유발하는 관계자 인터뷰를 강조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좌표’를 찍어야 한다거나, ‘참교육’으로 해당 기관을 망하게 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분노 가득한 댓글이 넘쳐난다. 영상 속에서 장애인은 늘 영락없는 피해자다. 그 앞에는 악랄하고 비일상적인 가해자가 있다. 이러한 가해-피해의 서사는 ‘Rage bait’에 가장 좋은 소재다.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나 간편하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저 가해자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너무나 아름다운, 그러나 ‘Bait’가 될 만한 사이보그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주로 화려한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인물을 생성해 영상을 만드는 계정이 늘어나고 있다. 댓글은 ‘장애가 있음에도’ 아름다운 여성을 예찬하고, 감동받아 간다고 얘기한다. 미디어 장애 재현이 중요함을 수년간 외쳐온 나이지만, 장애를 너도나도 소재로 삼는 지금의 시대가 올 줄은 몰랐다. 순진무구한 피해자도 흠결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사이보그도 아닌, 그냥 장애인인 난 가장 현실적인 소재를 손에 쥐고서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김지우 작가·‘굴러라 구르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