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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뢰사회의 노사협상 넘어서려면

입력 2026.05.18 20:09

피서철 관광지에서 바가지요금을 내본 경험은 흔하다. 뜨내기손님을 다시 볼 이유가 없으니 한철 장사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상인들의 전략 때문이다. 상인들을 욕하긴 쉽지만, 단속으로 근절하긴 어렵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관광객 숫자가 안정화되거나, 도시가 확장해서 내수 시장이 커지면 바가지 장사는 위축된다. 이번 노사협상은 반도체 초호황 성수기의 대목을 노리는 장사인가? 노사가 서로 믿을 수 없으니 성과급이라는 확실한 담보만 논의에 남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지난해 성과급 포함 1인당 평균 1억5800만원의 연봉을 받았고, 국내 임금노동자 가운데 최상위다. 영업이익에 대해 ‘큰 규모’의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 조합원들이 ‘귀족 노조’라 멸칭을 듣는 이유 중 하나지만, 영업이익에서 정률로 성과급을 받고, 주식을 받는 선례를 만든 SK하이닉스의 작년 교섭 내용을 가지고 삼성전자와 비교해야 공평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지금처럼 수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다면 별 이슈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기존 제조업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반도체 엔지니어는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아닌, 잘 준비해 ‘떠나면’ 글로벌 시장에서 입도선매의 대상이 되는 인력이다. 인공지능(AI)으로 대체도 쉽지 않다. 최근 무노조 경영 기조의 삼성 노무관리가 잘 먹히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긴급조정권이란 벼랑 끝은 안 돼

성과급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낸다고 시샘을 받거나 비난을 듣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대 대신 “의대에 미친 한국”에서 그래도 의대가 아닌 산업계에 들어가서 수출입국과 기술혁신의 한국을 만들고 있다고 칭찬받던 이들이었다. DS부문 영업이익 대비 15%를 요구하는 노조원과, 의대에 비해 불리한 처우 때문에 한국을 떠난다는 이공계 대열 옆에서 국내 기업을 다니는 이공계 인재들, 매일 충실하게 연구·개발하고 공정 안정화를 위해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의대 대신 공대와 자연대에 진학해야 하지만, 성과에 대한 배분 몫을 사측과의 협상에 의제로도 올릴 수 없다면, 과학기술 인재들에게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역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5월16일, 고객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부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내부 구성원인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동행’을 말하며, 쟁점에 대한 충분한 교섭 필요성을 두고는 말을 아꼈다. 5월21일로 예정돼 있는 파업,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언급 등 시급한 사정을 보건대, 이해당사자와 충분히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온 국민이 삼성전자의 노사협상 뉴스를 매일 보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자 12만명을 고용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기업, 최근에는 한국 주식투자자들이 대부분 한 주 이상 들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야기가 미디어 최상단에 위치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용수와 전력 공급은 물론 폐수 처리까지 수백억원부터 수조원까지 투자하고 있는 기업도 삼성전자다. 반도체 산업 관점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선 안 되고 계속 자본적 지출(CAPEX) 투자도 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삼성이라는 울타리 바깥에서 시민들이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과급 협상 과정에서 일정 몫을 할애해 협력사를 비롯한 생태계를 위한 연대 기금을 조성하자는 의견도 여러 경로로 노조에 전달되고 있다. 그럼에도 교섭 당사자만 비난하고 긴급조정권 등으로 벼랑 끝까지 몰아붙일 경우, 누구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한 노조의 선택지는 결국 ‘한철 장사’뿐이다. 어차피 욕먹을 바에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합리적이다. 중앙교섭이나 산별교섭이 아닌 기업별 교섭이 법제도로 패턴화된 한국에서 삼성전자 노조에만 무거운 책임을 씌우긴 어렵다.

노사공존의 신뢰 쌓는 과정 되길

내년에도 교섭해야 하고, 관계의 장기적 성숙이 더 큰 이익을 보장받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야 노조는 ‘사회적 책임’에도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당장 이번주가 삼성전자 노사관계의 분수령이다. 충분한 조율로 노사 간 공존에 대한 신뢰를 쌓는 학습 과정이 되길 빈다. 그 과정 속에서만 적정한 수준의 노사 간 이익 배분, 사회연대적 실천, 주주 가치 존중에 대한 다음 이야기도 전개할 수 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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