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왕관을 닮은 꽃잎, 화려한 색채, 짙은 향기로 장미는 오래전부터 ‘꽃의 여왕’이라 불려왔다. 그러나 가냘픈 아름다움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붉은빛과 가시는 피와 존엄, 저항과 투쟁의 의미도 있다.
꽃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특정한 의미와 정서를 품은 상징적 매개체이기도 하여, 인간의 기억과 감정, 이념을 담아내는 표상을 함께 지닌다.
영국 감독 켄 로치의 영화로 더 유명해진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는 생존과 삶의 품위를 함께 요구한 노동운동의 상징이다. 191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섬유노동자 파업에서 빵은 생존을, 장미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뜻했다. 이후 장미는 프랑스 사회당의 표상으로 등장했다. 특히 붉은 장미를 움켜쥔 주먹을 그린 이른바 ‘주먹과 장미(Fist and rose)’는 1970년대 프랑스 사회당의 공식 로고로 채택됐다. 이는 연대와 저항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행복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완강함을 보여준다. 1974년 대선 후보로 나선 프랑수아 미테랑의 연설 탁자 위에도 붉은 장미가 놓여 있었다.
투박한 손으로 상처받기 쉬운 장미를 감싸고 있는 ‘주먹과 장미’를 보면, 나는 “투사는 완강하게 달랠 줄 아는 사람”이라 했던 김인환 선생의 표현이 떠오른다. ‘완강하다’와 ‘달래다’라는 지극히 평이한 두 단어를 결합해, 그는 절묘한 투쟁의 방식을 제시했다. <다 말하게 하라>(수류산방)에서 그는 “모두가 다 말하게 한 다음 갈피를 짓는 것이 정치의 절차”라고 했다.
누구나 다 말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정리해 수렴하는 과정이 정치다. “나라의 중요한 일을 여러 사람이 논의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이의가 있으면 그만두었다”는 신라의 화백(和白) 제도는 오래된 정치의 원형을 보여준다. 천년의 세월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뜻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정의와 이념을 위해서는 완강함만으론 부족하다. 달래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완강하게 달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1980년 5월, 우리가 완강하게 투쟁했다면, 2024년 12월에는 조곤조곤 달래주었다. 1980년 투사의 꽃이 태극기였다면, 2016년에는 촛불이었고, 2024년에는 야광봉이었다.
투사의 꽃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으니,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꽃이 아니라 빛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