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팁 오닐 하원의장은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All politics is local)’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이 중요하고 주민들과 밀착된 정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 초년병 시절 동네 주민들이 당연히 지지해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선거운동을 소홀히 하다가 아깝게 낙선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건넨 조언에서 비롯된 소신이라고 한다.
6·3 지방선거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기에서 선출되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오닐 의장의 소신을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지자체장들은 공무원 조직을 지휘해 자신이 책임진 지역의 발전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의원들은 지자체장과 집행부를 감시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 전체의 일을 주로 다뤄야 할 국회의원이 시군구 의원이 처리할 법한 작은 지역 현안에 매몰되는 것이 문제라면, 역으로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이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것도 우려스럽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등장한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홍보물과 선거사무소 외벽에 붙은 거대한 사진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뿐 아니라 정당과 관계없이 주로 여당 후보들이 사용하는 선거운동 방법이다. 여전히 위에서 내려오는 교부금에 예산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하고 정부의 사업 계획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지역 현실에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런 선거운동 방식은 지방자치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동이다.
지방 정치인들이 지역 주민과 현안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광화문이나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정당 행사에 지역 정치인들이 너무 자주 동원된다. 지역 균형발전, 지역 소멸 대책을 논하기 이전에 이런 것부터 자제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더 현장을 찾고 주민들을 만나야 할 지역 정치인들이 중앙정치 바람에 휩쓸리고 정당 지도부 눈치를 보는 것은 지방정치의 성숙한 발전을 저해한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려해볼 때가 됐다. 2012년 대선에서 여야 모두 지방선거 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정작 선거가 끝나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없던 일로 만들었다.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는 당리당략, 특히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결국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물론 정당공천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후보가 난립할 수 있고,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일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 등록한 후보자 3명 중 1명이 전과자라는 사실 앞에서 그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연초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강선우·김경 사태는 국회의원과 지방 정치인의 밀착과 종속관계가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지방자치와 공천 방식은 많은 정치인을 유혹에 노출시키고 있다.
공천 과정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투명성과 공정성에서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경선에 여론조사를 활용하지만 업체 선정, 질문 내용과 응답 방식, 구체적인 득표율 모두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후보들에게 당의 결정에 승복하라고 요구한다. 또 공천을 신청하고 경선에 참여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당에 내지만, 그 돈을 정확히 어디에 쓰는지, 과연 그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지 알 방법이 없다.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라고 했던 오닐 의장의 말은 적어도 지방정치에서만큼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 지방정치의 핵심은 지역의 이해당사자이자 현안을 가장 잘 아는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자신들을 대변할 대표를 뽑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지방정치와 선거는 이런 원칙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놔줄 때가 됐다. 과감하게 지역정치는 해당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공천 폐지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후보 선출 과정에 정당이 최소한만 개입해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핵심은 주민 중심의 자주적인 지방자치 확립에 있다. 그 길에 이번 지방선거의 진정한 의미와 과제가 놓여 있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