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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내 새끼가 아니어도…우리는 포기하면 안 된다

입력 2026.05.18 20:15

수정 2026.05.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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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조카가 며칠 전 어린이집에 다니는 큰애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이는 노란 비단뱀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동물체험 가서 이렇게 선뜻 뱀을 두른 애는 그 녀석 하나였단다. 아이의 담대함에 감탄하기 이전에 내게서 질책이 튀어나왔다. “이거, 동물학대야!” “그건 그래…”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 “그럼 체험하지 말자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또 뾰족한 소리를 냈다. 조카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못하지.”

그래, 이해는 할 수 있다. 중뿔나게 나섰다가 아이에게 미운털 박힐까, 열심히 프로그램 짠 선생님 마음 다칠까 염려스럽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이벤트는 만들어야 하는데, 현란한 광고로 유혹하는 체험행사에 솔깃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애는 왜 그런 체험 안 시켜주느냐는 민원도 무서울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 이해해줘야 하는 상황에 참 속이 상한다.

예로부터 어린 인간은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뭐, 인류 역사 내내 인간 자체가 대부분 인간 대접을 못 받기는 했지만, 어린이는 특히 더했다. 인간 대접을 못 받았다면? 그렇다, 동물 취급을 받았다. 아이들에 대한 호칭부터 보라. 우리나라에서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로 불린다. 독일에서는 ‘새끼 돼지’로 불린다. 독일 유학 시절 알바로 돌보던 쌍둥이 형제의 할머니는 언제나 손자에게 “아이고, 내 새끼 돼지!” 했더랬다. 영어로는 새끼 염소다. 키드. 염소가 어떤 동물인가. 악마 상징 이미지가 씌워진 역사가 유구하다. 어린이는 그렇게 천하고 악한 동물 취급을 받아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아진 게 철창에 갇힌 고급 동물 취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깨끗한 보금자리, 영양 가득한 음식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맴만 돌아야 하는 고급 동물. 소음이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안전 문제니 하는 이유로 운동회도 축구시합도 현장학습도 못하는 아이들 처지가 그와 다를 게 있겠는가.

라디오에서 얼핏 우리 초중고생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이고, 수치도 매년 올라간다는 뉴스를 들었다.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수치가 놀라웠다.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는 아이들이 조사 대상자 4분의 1에 육박했던 것이다. 잘못 들었나 싶어 검색해보았는데 그 뉴스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한 상담 사례가 눈에 띄었다. 아이가 한동안 안 보이다가 나타났는데, 자살해볼까 하고 옥상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한참 뒤에 거짓말하지 말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아이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 연구 결과에 교육 관련 기관에서 내놓은 대책은 학교 근무 심리상담가를 두 배쯤 늘린 것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일은 아니겠지만 허전한 감은 지울 수 없었다. 아이들이 왜 그런 충동을 느끼는 상황까지 왔는지, 어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근본적으로 알고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근본이라 어렵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가장 시급하지 않은가.

끈끈이 쥐덫에 걸려 초죽음이 된 새끼 고양이를 구하는 동물보호가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미가 찢어지는 마음으로 포기했을 그 아기를 인간이 살려주었다. 발버둥치는 동안 털이 빠져나가고 피부가 찢겨나가고 눈곱은 들러붙은 어린 동물의 모습에 옥상에 올라선 어린 인간의 모습이 겹쳐 보여 나도 한동안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어미 고양이는 포기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포기하면 안 된다. 제 새끼가 아니어도 나서야 한다. 그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체험장에 갇혀 쓰다듬는 손길에 가죽만 남듯 지쳐가는 작은 동물이 우리 아이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인간은 깨달을 수 있다. 조카의 둘째는 동물체험장 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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