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가들은 선거 승리의 3대 요소로 구도, 인물, 이슈를 꼽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흔히 구도라고 말한다.
구도란 이를테면 ‘정권 심판이냐, 내란 세력 심판이냐’ 혹은 ‘2파전이냐 3파전이냐’ 같은 프레임이다. 그러나 이런 구도 속에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자에게 구도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도만으로 치른 선거가 끝난 뒤, 정작 주권자에게 무엇이 남게 될까?
인물도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인물이라고 해도, 그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순진하게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바뀌느냐, 본래 그런 사람이었냐’라는 얘기는 어느 사회든 존재하는 딜레마이다. 분명한 것은 권력자 개인을 믿는 것보다는 동네 이웃을 믿는 것이 배신당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슈는 정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공소취소 저지’ 같은 지역과 무관한 이슈가 제1야당 선대위 명칭에 들어간다. 지방선거인지 총선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지방선거에서 이슈는 지역주민들의 삶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정당과 후보들이 얘기하는 정책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여전히 개발 공약, 허황된 공약, 전시성 공약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공약들이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수도권은 비수도권대로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 많다.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불합리와 불편, 불안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때가 되면 들리는 공허한 소음’ 같은 공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구도라는 광풍 속에서도 촛불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이라면 고민의 주체는 주권자들이 되어야 한다. 구도만 지배하는 선거에서 주권자들 손에 남는 것은 없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하다. 정당과 후보자들에게만 기대할 일이 아니다. 지역을 알고, 삶을 아는 주권자들이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거창한 형식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후보자에게 ‘우리 지역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문서로 전달하고 약속을 받으면 더 좋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영역과 지역에서 정책 제안, 정책 협약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구도에 매몰되어 있는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지만,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지방선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필요한 정책도 있을 것이다. 작년에 미국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가 임대료 동결, 무상 버스, 저소득 주택 20만가구 건설 같은 정책을 내세운 것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개헌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 살든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이 개헌안에 포함된 것은 의미가 컸다. 지금 비수도권과 농어촌 주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다. 의료, 돌봄, 교육, 교통, 주거, 일자리, 경제, 농업, 환경 등의 영역에서 비수도권과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이 제안되고 토론돼야 한다. 농어촌의 경우 그런 정책을 읍면에서부터 추진해야 실효성이 있다. 읍면 단위 주민자치의 강화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농어촌의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조례도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막연하게 ‘탄소중립’을 얘기할 때는 지났다. 유엔이 마지노선으로 삼은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 450PPM’을 넘어서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되었다.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와 먹거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부터 토론돼야 한다. 기본이 돼야 할 것은 지역별 자급이다. 에너지와 먹거리 모두 ‘지산지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편 ‘해야 할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때문에 전남, 전북, 충남, 대전, 세종, 충북 등지에서는 역대급 규모의 초고압 송전선이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비수도권 지역의 입장에서는 대표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중앙집권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전력망 정책은 중앙정부와 한전이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도 제한된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을 대표하겠다는 선출직이라면, 중앙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비수도권을 ‘전력식민지’로 만드는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지방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