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소란의 ‘고슴도치콘’ 눈길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연남장에서 열린 소란의 도파민 치료 콘서트 <고슴도치콘>에서 고영배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엠피엠지뮤직 제공
공연장에서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 반입은 금지된다. 관객 간 잡담은 물론 공연 중 박수·함성·떼창도 금물이다. 가수가 무대에 올라도 환호 대신 ‘따뜻한 눈빛’만 허용된다. “오로지 눈과 귀를 포함한 모든 감각으로” 공연을 느끼고, 공연 입장 시 받은 수첩과 연필로 감상을 적는다.
‘도파민 중독 치료’라는 슬로건을 내건 밴드 소란의 콘서트 <고슴도치콘>(고영배의 슴슴한 도파민 중독 치료 콘서트)이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서울 서대문구 연남장에서 열렸다. 스마트폰과 환호를 없앤 공연은 음악이 주는 긍정적 도파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공연 둘째 날인 지난 16일 고영배는 공연에 앞서 “샤워를 하면서도 벽에 휴대폰을 붙이고 영상을 보는 나 자신에게 심각성을 느껴 도파민 중독 치료를 위한 공연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파민 디톡스 선서’로 시작된 공연은 총 13곡의 노래와 두 번의 낭독이 이어졌다. 고영배의 ‘도파민 중독’과 ‘싫어하는 것’을 주제로 준비된 낭독은 ‘재미없는 자극을 견디는 방식으로 도파민 중독을 이겨내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공연의 목적이 ‘도파민 중독 치료’인 만큼 공연은 음악의 자극을 점차 높여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첫 곡 ‘딜리버리’는 불을 끈 채 무반주로, 두 번째 곡 ‘벚꽃이 내린다’는 기타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이어지는 ‘기적’과 ‘셔터’는 베이스와 드럼을 더하는 등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신나는 음악이 자리했다.
공연에는 치료를 위한 명상 시간도 마련됐다. 공연의 한 대목이 마무리될 때마다 경건한 싱잉볼 소리가 울리고 “모두 눈을 감고 명상하며 여운을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눈을 뜨고 감상을 적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안내음성이 흘렀다. 관객들은 어색한 분위기에 피식 웃다가도 금세 명상에 집중했다. 관객들의 수첩에는 빼곡하게 감상문이 채워졌다.
이날 공연엔 특별 게스트로 개그맨 이창호가 등장했다. 자신의 ‘부캐’인 한사랑산악회의 부회장 ‘이택조’ 캐릭터로 변신한 이창호는 뮤지컬 <킹키부츠>의 넘버 ‘랜드 오브 롤라’를 열창하며 무대에 올랐다. 이창호는 관객을 향해 “왜 사람이 왔는데 환호를 안 해” “여러분은 못 보는 인터넷 제가 하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무반주로 선보인 우즈의 ‘드라우닝’과 데이식스의 ‘예뻤어’에 관객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웃음을 참기도 했다. 이창호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고영배는 “이 정도의 고강도 도파민 참기 훈련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커다란 위기를 이겨낸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00분이라는 공연 시간은 스마트폰과 환호 없이도 빠르게 지나갔다. 급한 연락이나 SNS, 촬영과 차단된 공연은 오히려 음악과 퍼포먼스에 몰입하게 했다. 모든 공연이 마무리되고, 팬들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주최 측에 맡겨두었던 스마트폰을 찾아 귀갓길에 나섰다.
소란의 신나는 무대를 보고 팬이 됐다는 정효진씨(32)는 “항상 관객 참여가 많던 이전 공연과 전혀 다른 느낌이라 색달랐다”며 “공연의 재미와 별개로 스마트폰이 있으면 문자도 확인하고, 시간도 확인하느라 주의가 분산됐는데 오늘은 10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지원씨(31)는 “공연을 보다 보면 사진을 찍으려고 눈보다 화면으로 가수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공연은 눈으로 놓치지 않고 봐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음악에 온전히 집중한 덕분에 건강한 도파민을 얻어 갈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