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4일 중국 베이징의 톈탄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외교 무대에서 패션은 종종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주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는 두 사람의 옷차림이었다. 남색 계열의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맸고, 상의 윗단추는 하나만 잠갔다. 마치 미리 약속한 듯한 시밀러룩(similar look·비슷한 분위기의 옷차림)처럼 보였다.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고도의 전략일까.
전문가들은 두 정상의 옷차림이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주변 인사들은 오히려 다양한 색상의 정장과 넥타이 차림이어서 두 정상의 ‘시밀러룩’은 더 도드라져 보였다”며 두 정상의 비슷한 패션 스타일이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외교 무대에서 옷차림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라는 점을 생각할 때 비슷한 패션으로 거울효과나 카멜레온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옥스퍼드대 협상학 강사이자 협상·리더십 연구기관 대표인 엔다 영은 가디언에 “두 정상의 비슷한 옷차림은 카멜레온효과의 연장선”이라며 “협상 상황에서 상대와 비슷한 복장·자세·언어를 사용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친밀감과 신뢰를 높이는 심리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카멜레온효과는 미국 사회심리학자 타냐 샤트랑과 존 바그가 1999년 발표한 개념이다. 타인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모방하게 되는 현상이다. 두 학자는 이러한 비언어적 모방이 관계 형성과 호감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화 상대의 자세나 표정, 행동을 따라 할수록 상대가 느끼는 친밀감과 협력 수준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무대에서 남색 정장에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자주 착용한 것과 달리, 시 주석의 패션은 상대와 상황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보여왔다. 공식 외교무대에서는 대체로 어두운 색의 서구식 정장을 착용해 국가 정상으로서의 격식을 강조한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한 군사 퍼레이드 등 상징성이 강한 행사에서는 중국 혁명의 상징인 ‘중산복(마오 수트)’ 스타일을 선택해 권위와 역사성을 강조했다. 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에서도, 두 정상 모두 비교적 단정한 톤의 정장을 착용하며 ‘격식과 통제된 긴장’을 드러내는 외형을 택했다.
지난해 만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정치 지도자들은 ‘패션 미러링’을 외교 무대에서 적극 활용해왔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함께 아마존 지역을 방문했다. 당시 두 정상은 공식적인 정장 대신 가벼운 흰 셔츠 차림으로 나란히 등장해 함께 이동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손을 맞잡는 장면까지 연출되면서, 기후 의제와 글로벌 부유세 논의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함께 한다는 ‘정치적 브로맨스’를 보여줬다.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편이라는 인상을 시각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당시 둘의 다정한 사진들은 마치 ‘신혼여행’ 모습 같다며 온라인에선 밈까지 확산되기도 했다. 가디언도 이를 두고 “공식 사진을 보면 마크롱의 브라질 여정은 국제외교보다는 낭만적인 휴가에 더 가까웠다”고 했다. 이러한 밈이 확산하면서 두 정상도 이에 화답하는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직접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룰라 대통령과 자신의 모습이 유명 로맨스 영화 <라라랜드> 포스터에 합성된 사진을 올렸다. 그러고는 “그것은 결혼식이었다”면서 “프랑스는 브라질을 사랑하고, 브라질도 프랑스를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룰라 대통령 역시 양국 국기와 하트 이모티콘으로 이에 응답했다.
반대로 ‘옷차림의 불일치’가 정치적 긴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미국 백악관 정상회담 당시 군복을 연상시키는 차림으로 등장했다가 ‘복장 불량’ 공격을 받았다. 전쟁 상황을 반영한 상징적 복장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로부터 격식 없는 태도라며 비판을 받은 것이다. 결국 6개월 뒤 다시 열린 백악관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넥타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재킷을 착용해 정장과 군복 사이 절충안을 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시밀러룩 외교’가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보일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은 “미러링 효과는 자연스럽게 인식될 때에만 작동한다”며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면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정상의 ‘시밀러룩 전략’은 회담 내내 지속되지는 않았다. 첫날 공식 환영 행사에서 두 정상은 비슷한 색감과 정장 스타일로 시각적 유사성을 드러냈지만, 이후 이어진 일정에서는 각자의 기존 스타일로 돌아갔다. 시 주석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단정한 어두운 톤의 정장을 유지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재킷을 풀어 입거나 넥타이 착용 방식이 보다 느슨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 이후 시 주석을 “진정한 친구”라고 표현한 것처럼, 한층 완화된 분위기 속에서는 굳이 ‘시밀러룩’과 같은 시각적 호감 신호가 필요하지 않았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