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중국 권부의 심장부’로 불리는 중난하이 정원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산책하면서 “정상회담 어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엄지손가락만 치켜들었다. 언론 현장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중국 측 관례를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내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저렇게 조용한” 또는 “저렇게 절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 나왔다. 2박 3일 국빈방중 기간 잠잠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SNS와 함께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번 방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르고 동행한 미국 기업인들에게 “시 주석과 중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9년 전 트럼프 대통령 방문 때 고궁박물원(자금성)을 하루 통째로 사용하며 환대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다소 굴욕적인 ‘황제 의전’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두 정상은 이번에 톈탄공원을 나란히 걸었다. 톈탄공원은 몽골세계제국 붕괴 후 들어선 명나라 황제가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고 하늘에 알린 곳이다. 시 주석은 중난하이에서는 250년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수령 400년 된 나무를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과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건설적 전략안정관계’란 틀에서 다루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으킨 관세전쟁은 미국이 중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시장에 수직적으로 편입해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도록 계도하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값싼 공산품 공급자이자 시장 역할을 맡기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이번 국빈방중으로 관세전쟁은 미국이 중국을 대등한 대상으로 보고 기존 패권국과 패권 도전국 간의 충돌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합의로 마무리됐다. 시 주석은 이번 방중이 “역사적이고 상징적”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며 “중국은 오랫동안 갈망했고 미국은 저항했던 ‘지정학적 역동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지정학적 역동성을 만들어낸 것은 중국의 ‘기술굴기’와 미국의 노동·중산층 붕괴 현상이다. 또한 미국 대외정책 ‘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패권은 결국 주변국들의 승인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미국 일부 인사들은 중국의 탓으로 돌렸다. 서방 유력 매체들은 중국의 소극성을 짚은 한편 ‘중국은 여전히 국제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으며 이는 미국 패권이 여전히 쇠퇴하지 않았다는 신호’라는 메시지를 행간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머무는 중재국 출신 기자들은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강고한 자세를 비판하면서도 미국이 이란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경험에 근거해 불신했다. 무슬림에게 9·11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는 마냥 팍스의 시대는 아니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이 대등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제 힘이 대등하지 않다는 점은 중국이 더 잘 알고 있다. 중국 지식인이나 관료들에게는 앞으로 “미국 패권 없는 미국의 시대”가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중국은 이런 전제하에 패권 경쟁을 해나갈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사우스 외교에 공들이고 있는 것은 자원 확보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라 이러한 시대 힘의 향배가 어디로 요동칠지 모르는 국면에서 다양한 역동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