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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자 없는 과로, 알고리즘이라는 블랙박스

입력 2026.05.19 20:06

열심히 일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소득과 승진, 인정과 경력 개발, 가족과 나의 안정된 삶. 그러나 과로와 산재, 아플 때도 일을 멈추지 못하는 상태까지 ‘자발적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강제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노동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몇해 전 5월, 한 쿠팡 새벽배송 기사가 밤샘 배송을 마친 뒤 자택에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41세였다. 유가족은 그가 관리자에게 보낸 문자를 발견했다. “개처럼 뛰고 있다.” 사망 전 12주 동안 그는 주 평균 73시간21분, 주 6일 야간노동을 했다. 그가 떠난 두 달 뒤 같은 회사의 또 다른 새벽배송 노동자가 숨졌다. 2026년 2월에도 한 새벽배송 기사가 배송 도중 쓰러졌고, 투병 끝에 사망했다. 이 죽음들을 단순한 사고라 부를 수 있을까.

한국의 산업재해는 여전히 낡고도 잔혹한 문제다. 2025년 한국의 산재 사망자는 1735명, 하루 평균 약 6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숫자의 한가운데에 이제 새로운 유형의 산재가 들어와 있다. 플랫폼 노동의 위험이 새롭게 얹히고 있다. 배달라이더 산재 승인 건수는 2019년 1075건에서 2023년 6405건으로 6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렇다면 이 위험은 누가 만드는가. 회사는 명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동자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 알고리즘이다.

사회학자 마이클 버라워이는 제조업 노동자들이 경영진이 설계한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노동 강도를 높이는 현상을 ‘설계된 동의’라고 불렀다. 강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센티브가 걸린 게임에 참여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에서 이 메커니즘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관리자가 했던 일을 이제 알고리즘이 한다. 다만 더 보이지 않고, 더 개인화되며, 더 작은 단위로 쪼개져 작동한다.

플랫폼에서는 알고리즘이 일을 배정하고, 평가하고, 수입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는 종속을 경험하지만, 자신을 종속시키는 상대를 정확히 식별하기 어렵다. 별점, 등급, 배차 우선순위 등은 노동자에게 매 순간 자기 관리를 요구한다. 한 건의 호출, 한 번의 배달, 하나의 일감으로 쪼개진 노동은 ‘진짜 고용’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단위들이 쌓이며 플랫폼에 대한 의존은 더 강해진다.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 도구가 아니다. 위험한 게임을 설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높은 등급을 유지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수행률과 배달 실적을 충족해야 한다. 등급에 따라 배차 우선순위와 수수료가 달라지고, 새벽배송에서는 일정 수준의 업무 수행률을 충족하지 못하면 배송 구역이 회수되는 이른바 ‘클렌징’이 작동한다. 명시적 강제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내부 원리를 알 수 없는 노동자에게 합리적 선택은 대체로 하나로 수렴된다. 더 오래,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는 것.

그 결과는 몸에 새겨진다. 2025년 8월 군포의 쿠팡이츠 라이더는 골드플러스 등급을 유지하며 사고 전날 14시간을 일하다 숨졌다. 배달노동자 조사에서 42.7%는 인센티브와 직결된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새벽배송 노동자 조사에서는 83.8%가 업무 속도가 알고리즘에 좌우된다고 응답했지만, 산재보험 가입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알고리즘은 노동자에게 직접 “과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과로가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는 조건을 설계한다.

그러므로 이 죽음들은 개인의 비극만이 아니다. 우연한 사고도, 순수한 자발적 선택의 결과도 아니다. 등급제와 인센티브, 평가 별점과 배차 알고리즘이 결합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그 마지막 메시지는 그가 자신의 노동을 몰랐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는 뜻에 가깝다.

2024년 12월 발효된 EU 플랫폼노동지침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노동자에게 공개할 의무, 알고리즘 결정에 대한 인간의 감독과 노동자의 이의제기 권리, 그리고 계약 종료와 같은 핵심 결정을 알고리즘만으로 내릴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회원국들은 올해 안으로 이를 국내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에도 같은 수준의 알고리즘 투명성과 노동자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형식상 위탁계약이든 약관 가입이든, 알고리즘을 통한 실질적 종속이 존재한다면 노동자로서의 보호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발적 과로라는 역설의 이면에는 불균형한 힘으로 설계된 규칙이 있다. 알고리즘이라는 블랙박스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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