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정책실장이 쏘아올린 초과세수, 국민배당금 논쟁이 이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건설적인 논쟁은 드물다. 첫째 걸림돌은 개념 혼동이다. 초과이윤, 초과세수, 세수증대, 잉여금, 국민배당금 같은 개념들이 뒤섞이면서 틀린 해석이 난무한다.
예컨대 초과세수는 잉여금이 되어 법적으로 배분된다는 주장이 있다. 틀렸다. 내년에도 큰 폭의 초과세수가 예상된다는 말도 있다. 이것도 틀렸다. 최악의 해석은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가가 가져와 국민에게 배당하자는 주장이란 오해다.
이에 개념을 정리해보자.
국가재정법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 것은 초과세수 자체가 아니라 잉여금이다. 그런데 올해 초과세수가 꼭 잉여금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회가 국채 발행 한도액을 정하고, 재정당국은 그 한도 안에서 실제 발행량을 조정할 수 있다. 초과세수만큼 국채 발행량을 줄이면 배분할 잉여금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초과이윤, 초과세수, 세수증대를 구분하는 일이다. 초과이윤은 기대 이윤을 넘어서는 기업의 이익이다. 이는 주주 배당, 임금, 투자 재원으로 남고, 국가는 그중 법인세만 가져간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별도의 논쟁이다. 김용범 실장이 거론한 것도 초과이윤 그 자체가 아니라 초과이윤에 따라 늘어나는 법인세수다.
그런데 법인세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초과세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초과세수는 예산보다 더 많이 들어온 세수를 뜻한다. 올해는 본예산보다 법인세수가 더 많이 걷힐 것으로 예상되기에 초과세수가 발생한다. 그러나 내년 본예산 세수추계를 크게 잡는다면, 내년에는 초과세수가 아니라 오히려 세수결손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논쟁의 핵심은 초과세수가 아니다. 핵심은 세수증대다. 과거 윤석열 정부 때는 감세 등으로 세수감소가 극심했다. 국세수입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396조원에서 불과 2년 만인 2024년 337조원으로 줄었다. 세수감소율은 무려 15%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1.7%, 코로나 위기였던 2020년 -2.7%, 외환위기였던 1998년 -3%와 비교하기 어려운 극단적 세수감소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과 야당은 예산보다 덜 걷힌 ‘세수결손’만 주로 문제 삼았다. 정작 전년보다 세수가 줄어든 ‘세수감소’ 문제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도 진지한 반성 없이 “예상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세수결손 문제만 사과하고 넘어갔다. 세수결손은 예측의 문제지만, 세수감소는 정책의 문제다.
이번에도 초과세수보다 세수증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최근 초과이윤이 경기 주기적 반짝 이윤이 아닌 AX(AI 전환)에 따른 구조적 이익이라면, 중기적으로 증대될 세수를 어떻게 쓸지 계획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의무다.
예산은 정치다. 증대된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미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국민의 후생과 행복을 증진시킬지는 국민들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증대된 세수의 상당 부분을 AX와 GX(녹색 전환)를 동시에 뒷받침하는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쓰는 것이 좋다고 본다. 특히 에너지 효율 투자는 사회 전체로 보면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만, 투자 주체와 편익을 보는 주체와 시기가 달라 민간 시장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영역이 정부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다른 시민은 증대된 세수를 복지, 교육, 청년 창업, 지역균형발전, 문화예술, 돌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논쟁이 건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첫째 이유는 정파적 선입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확장재정이 맞을까, 건전재정이 맞을까. 우문이다. 필요한 지출은 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은 줄여야 한다. 정파적 선입견에 따라 총량 구호로 섣부르게 재단하지 말고, 사안별로 따져야 한다. 둘째 이유는 개념의 혼동이다. 개념을 명확히 하면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중장기적 세수증대분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지 국민적 토론을 통해 합의하자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반사적 찬반이 아니라 정확한 개념에 기초한 건설적 논쟁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