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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쏠림, 양적 분산 넘어 공간분업 재편해야

입력 2026.05.19 20:38

수정 2026.05.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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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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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광주 지역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법안이 정치권과 특히 SNS를 뜨겁게 달궜다. 이를 비판한 일부 중앙 일간지들은 익숙한 논리를 꺼내 들었다. 예술이든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이든,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켜켜이 쌓인 수도권을 떠나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급 인적 자본과 그 네트워크는 좀처럼 옮겨 심을 수 없다는 ‘착근(着根)’의 논리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지역 문제의 역설과 본질이 드러난다. 이전 반대 논리가 그 자체로 우리 공간 구조의 진단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 집중이 만들어낸 결과를 다시 원인처럼 내세우고 있다. 한국 경제는 분공장(branch plant) 경제 유형의 공간분업 위에서 작동해왔다. 본사·연구개발·기획 등 ‘구상’ 기능은 서울에 모이고, 조립·생산이라는 ‘실행’ 기능은 비수도권 산업도시로 흩어지는 위계적 분업이다. 울산처럼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상위인 곳이 곧 대졸 청년층이 선호하는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풍부한 곳이 아니라는 통계의 역설은 여기서 비롯된다. 생산은 비수도권 일부에서 이뤄지지만,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는 대체로 수도권 본사에서 결정한다.

기업 입지 통계는 이러한 공간적 위계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025년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 조사에 따르면 500대 기업 본사의 약 77%가 수도권에 있다. ‘제조업 메카’라는 부산·울산·경남은 10%에도 못 미친다. 한국은행 분석은 더 극적이다. 시장가치 기준 30대 기업의 95.5%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정책이 추진됐음에도 민간 대기업 본사와 핵심 의사결정 기능의 수도권 쏠림은 더 굳어졌다. 수도권은 최근 기존 구상 기능 위에 실행 기능까지 포개지며, 산업 생태계 밀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17개 시도 1인당 GRDP의 지역 간 격차와 GDP 대비 수출 비중 사이의 상관계수는 2000~2012년 0.89에 이르렀다가, 2000~2024년에는 0.62로 약해진다. 2000년대만 해도 지역 간 격차는 수출 제조업의 입지 여부에 좌우되어 산업도시가 격차의 윗단을 차지했지만, 2021년 이후 그 동조화는 약화되고 있다. 비수도권 산업도시의 경쟁력이 둔화되는 한편 수도권의 생산성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본사·관리 기능에 머물던 수도권이 이제 생산소득 면에서도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지역 간 격차는 어느 지역에 무엇이 있는가가 아니라, 가치 생산 과정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분절되고 위계화되는가의 문제다. 공간적 위계는 단순한 중심-주변 도식이 아니라 네트워크 내 기능적 위치와 통제력으로 짜인다. 한예종 한 곳, 반도체 팹 한 동을 옮기느냐 마느냐의 양적 분산 논쟁이 이런 본질을 비켜가는 이유다. 한국은행 시뮬레이션도 이를 뒷받침한다. 비수도권 거점도시에 집중 투자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때의 GDP 효과(+1.3%)가 수도권 위주 투자(+1.1%)보다 더 크다. ‘모두를 위한 길’과 ‘수도권을 위한 길’은 같지 않다. 지리학자 도린 매시가 지적하듯이, 중앙정부의 많은 부문 정책이 알게 모르게 특정 지역을 위한 암묵적 지역 정책으로 작동한다. ‘국가대표’라는 이름 아래 문화·산업·인프라가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풍경은 이처럼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필요한 것은 공간분업의 기능적 배치를 다시 짜고 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도권처럼 하나의 권역 안에서 구상과 실행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생태계, 예를 들면 일본의 오사카·나고야권에 견줄 만한 생태계를 비수도권에도 조성해야 한다. 분공장이 아니라 본사·연구개발·핵심 의사결정 기능이 함께 자리 잡고, 권역 내부에서 기획과 생산, 투자와 고용이 맞물려 돌아가는 ‘길항(拮抗)의 극(極)’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논의가 보여주듯이, 공간분업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기능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재조정될 수 있는 구조다. 이제 지역 문제의 담론은 지역에 무엇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를 넘어, 국민경제의 구상과 실행 기능을 어떤 공간 질서 속에 다시 배치할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지역 정책의 핵심은 시설 몇개를 흩뿌리는 분산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공간분업 체계를 새로 구축할 것인가에 있다. 한예종 광주 이전 논쟁이 던진 진짜 질문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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