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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현장체험학습,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입력 2026.05.20 20:10

수정 2026.05.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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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학년 부장으로 있던 시절, 고2 학생들을 인솔해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당시 한 학생이 비선대에서 장난을 치다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급히 119에 연락했지만, 인솔 책임자로서 구급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수 없어 그 학생을 등에 업고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큰일 없이 무사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수십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여전히 아찔한 기억이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수학여행은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의 꽃’이라 불리는 소중한 경험이다.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곳에서 함께 길을 헤매며 웃고, 평소 무서워만 했던 선생님과 격식 없이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이 모든 것이 교실 안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초중고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상치 않다. 교사의 형사책임 부담, 강화된 안전 기준에 따른 비용 상승, 학교·지역별 경비 격차, 학부모 기대와 학교 현장의 위험 회피 심리로 인해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수학여행을 아예 가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 초등학교는 실시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소풍 같은 행사조차 ‘사고·민원 위험’을 이유로 폐지하는 학교까지 생겨났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들 역시 비용 부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박3일 국내 수학여행 비용은 60만원 수준까지 올랐고, 해외 수학여행은 200만원대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대통령도 “사고 위험 때문에 학생들에게서 좋은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에 일부 교사들은 “정작 제도적 보호 장치는 없이 책임만 현장에 떠넘기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갈등의 핵심 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교사에게 집중된 ‘무한 책임’ 구조다.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교육청이 아닌 인솔 교사 개인이 먼저 형사 피의자이자 민사 피고가 된다.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해도 학부모가 교사 개인을 고소하거나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교사 사이에서는 “내 인생과 직업을 걸고 수학여행을 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둘째는 비용 격차 문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기준 강화와 인솔 인원 확대, 보험·시설 기준 상향 등이 맞물리면서 학교와 지역에 따라 수학여행 비용 편차가 최대 17배까지 벌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셋째는 교사의 열악한 노동권과 과도한 행정 업무 부담이다. 교사들은 수학여행 같은 숙박형 체험학습 기간 동안 24시간 학생 취침 지도와 야간 순찰까지 맡으며 긴장 상태를 이어가야 한다. 이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 여기에 장소 선정과 계약, 안전 점검 등 전문 여행사 직원 수준의 행정 업무까지 교사들에게 떠넘겨지면서, 정작 수업 연구와 교육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결국 교사의 법적 보호와 비용 지원 현실화라는 두 과제를 함께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통적인 수학여행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정부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교사를 민형사상 직접 책임에서 제외하고, 국가나 교육청이 1차 책임을 지는 방향의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법 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용 지원 확대와 인솔 교원 수당 현실화, 행정 업무의 전문 인력 분산 등 현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제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갈등은 교사의 책임 회피나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 어느 한쪽 탓만 할 수는 없다. 현행 제도는 안전 기준은 강화하면서도 그에 따른 비용과 책임은 학교 현장에 그대로 떠넘기고 있다. 그 결과 체험학습을 유지할수록 학교가 더 큰 법적·재정적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된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체험학습의 무조건적인 확대도, 일방적인 축소도 아니다. 책임과 비용, 안전의 부담을 제도적으로 다시 배분하는 일이 먼저다.

교육활동은 국가와 학교가 제도적으로 승인한 공적 활동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사 개인이 오로지 책임지는 구조는 비합리적이다. 교사가 불안 없이 학생 곁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현장체험학습을 비롯한 진정한 교육 정상화로 가는 출발점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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