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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입력 2026.05.20 20:18

수정 2026.05.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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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Holy see) 파빌리온은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관람한 전시 중 단연 가장 인상적이었다. 교황청의 권한으로 아주 특별한 곳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바로 베네치아에 있는 여성 교도소였다. 이를 기념하듯 교황이 직접 베네치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관람객은 까다로운 사전 예약과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야 입장할 수 있었고, 전시를 안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감인이었다. 교도소 안에는 일과를 보내는 수감인들이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고, 관람객은 그들 사이를 지나며 그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과 주인공으로 출연한 독립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이었다. 이후 일행들과 어떤 이를 작품으로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에 바티칸 파빌리온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정원이었다. 비가 쏟아지다가도 잠시 해가 나고, 다시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베네치아에서 유독 반가운 화창한 날이었다. 높은 장벽 사이의 작은 쪽문을 따라 들어가니 성당 뒤뜰에 숨겨진 듯한 비밀의 정원이 펼쳐졌다. 정작 작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관람객은 일정한 시간 간격과 거리를 유지한 채 입장할 수 있었다. 전시의 제목은 ‘귀는 영혼의 눈이다’(The Ear Is the Eye of the Soul). 지난 전시가 ‘나의 눈으로’(With My Eyes)였던 것을 생각하면 연속성 있는 제목이었다.

해야 할 일은 단순했는데, 안내자가 주는 수신기가 달린 헤드폰을 끼고 그저 정원을 걷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드니 길을 따라 송신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음악이 서서히 바뀌었다. 감미로운 연주가 들려오다가, 성가와 아리아로 이어지기도 하고, 나지막한 낭송이 들려오기도 했다. 줄지어 심어진 작물들이 푸르게 우거지고, 정원 위로 노란 햇살이 쏟아졌다. 오래된 올리브 나무와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 벤치, 성모 마리아상이 보였다. 사람들은 멈춰 서 있거나 나무에 기대 앉아 있거나 식물의 냄새를 맡거나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보았다. 그 사이로 음악과 정원의 소리, 침묵과 사색의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걷게 하고자 했나? 어느새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것을 돌려주고자 했나. 보이는 모든 것이 성스럽게 느껴지고, 이 순간이 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을까. 삶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을까. 순간 정원에 있던 새들이 무리 지어 하늘로 비상했다. 삶은 그 자신에게는 한 편의 영화와 같다는 것. 그 새로울 것 없는 생각이 순간 진리처럼 다가왔다. 산책을 마친 후에도 긴 여운 안에 살았다.

어쩌다 보니 내 삶에 또 한 번의 베니스 비엔날레가 찾아왔다.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벅차 모든 일행이 전시를 보기 위해 숙소를 비운 뒤에 혼자 남아 세탁기를 붙잡고 엉엉 운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치스럽고 황홀한 일이어서 도리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곳의 구름과 바다, 배와 광장, 조각상과 미술품들을 보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이것은 양다솔의 어떤 조상도 겪은 적 없는 일이다. 피에 새겨진 적 없는 일이다. 이 유서 깊은 섬을 제 동네 다니듯 누비는 동안 나는 조상을 배반해서 슬펐고 배반해서 기뻤다. 알아보는 것은 적은데 입은 한껏 벌리고 아무거나 떠들며 지냈다.

올해로 다시 비엔날레를 방문한 나는 여전히 신선한 감상을 할 만큼 무지하지도, 탁월한 감상을 할 만큼 깊이 있지도 못하다. 나의 감상은 인공지능(AI)의 답변보다도 못하다. 의문이 들 것이다. 너는 대체 왜 거기 있느냐고. 나 역시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한다. 그리고 한참 허공을 보다 대답할 것이다. 여기 있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고.

양다솔 작가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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