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앞두고 만난 해남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
“다반사 있지요? 차 마시듯 밥 먹듯 하는 것이 일상”
“‘하라’고 재촉하는 세상 속에서 ‘멈춰서’ 마음 정화
그 힘으로 이웃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
대흥사 조실 보선 스님이 이달 초 비가 내리는 경내를 걷고 있다. ⓒ사진작가 안홍범
차를 만드는 데도 때가 있다. 너무 이르면 여리고 너무 늦으면 봄맛이 지나간다. 오는 24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8일 해남 대흥사에서 만난 조실 보선스님은 “올해는 비도 알맞게 왔고 봄 날씨도 좋았다”며 갓 덖은 녹차를 권했다. 중국 남방에서 청명 무렵 찻잎을 딴다면 대흥사는 곡우를 전후해 찻잎 따기를 시작한다. 함께 마시기 위해 만드는 차라 양이 많지 않아 전통적인 방식대로 일일이 가마솥에서 차를 덖는다. 찻잔에선 맑은 향이 올랐고 뒤엔 고소한 맛이 남았다.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 다맥을 잇는 본류이다보니 차를 마시는 데도 특별한 법도가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반사라는 말이 있지요? 차 마시듯 밥 먹듯 일상으로 하는 일입니다. 차는 그렇게 매일 편하게 마시는 거예요. 다구가 없으면 주전자에 넣고 끓여 마셔도 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의장인 보선스님은 선방과 종단 행정을 두루 거쳐온 원로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대흥사 주지, 중앙종회의장 등을 지냈고 경실련 공동의장 등 사회활동에도 참여했다.
차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 스님은 불교의 문턱도 높게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불교를 만나는 방식은 달라졌다. 절을 찾는 이들은 신앙의 공간으로만이 아니라 쉼과 위안의 공간으로 절을 바라본다. 또 문화콘텐츠로서 불교를 접하기도 한다. 불교계에선 이런 관심이 반갑다는 기대도 있지만 신앙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해남 대흥사 조실 보선 스님은 지난 8일 “차는 ‘다반사’라는 말처럼 밥처럼, 물처럼 매일 편하게 마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작가 안홍범
-요즘 젊은 세대는 불교를 신앙보다 문화로 만나는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그렇지요. 젊은이들이 종교 자체에 관심이 많지는 않습니다. 시대 흐름 속에서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것도 좋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상들이 누리고 살았던 생활과 문화가 지혜롭고 합리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문화가 절에 남아 있다는 말씀이신거네요.
“불교는 오랜 세월 이 땅에 뿌리내린 유산입니다. 그러니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절에 오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강요하지 않으니 편안히 접할 수 있고, 내재된 우리 정서가 그 문화와 맞는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그런 관심이 한 걸음 더 들어가려면 사찰과 스님들은 무엇을 건네야 할까요.
“물론 스님들도 공부와 수행을 통해 그런 관심을 수용하고 사람들을 인도할 수행력을 갖춰야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종교를 가졌건 상관없어요. 자기 수행을 완성해 마음을 정화하고, 그 힘으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면 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수행.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자 스님은 “쉴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모든 이들이 “하라”고 재촉하는 세상에서 일단 멈추는 것. 그렇게 멈춰야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것이 ‘참된 공부’라고 강조했다.
-멈추는 것이 어떻게 공부가 됩니까.
“현대 사람들은 갈 줄만 알지 쉴 줄을 모릅니다. 휴가를 가서도 더 바쁘게 다니잖아요. 쉬는 것은 지금까지 하던 것을 잠시 놓고 하늘도 보고 흘러가는 물도 보고 자기 자신도 돌아보는 겁니다. 추구하던 것을 잠시 멈추는 것. 그것이 휴식이고 공부입니다. 절에서는 쉬는 공부를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에 무감하거나 무관심하라는 것은 아니다. 종단 안팎에서 굵직한 일을 헤쳐온 스님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 국면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님은 “현재 여러 가지로 막혀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대립과 날 선 언어가 오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묻자 스님은 답했다. “네 생각만으로 살지 말라고 해야지요. 다 같이 사는 세상 아닙니까.”
편을 가르는 말이 거칠어질수록 불교의 ‘중도’는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립으로 오해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흔히 말하는 중립과는 다른 겁니까.
“전혀 다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는 양변에 치우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쾌락에도, 고행에도 빠지지 말라는 것이지요. 무엇이 바른지, 무엇이 알맞은지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울까 싶습니다.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게 되지요. 그때 자기 얼굴을 보며 웃으세요. 어제도 수고했고 오늘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너 참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겁니다. 자기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것이지요. 마음이 풀려야 남을 배려할 여유도 생깁니다.”
대흥사 조실 보선 스님. ⓒ사진작가 안홍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