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삼성전자는 노사 간 잠정 합의 타결로 총파업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21일 주가가 급등하는 등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 폐기 6년 여 만에 노사 갈등이 전면에 부각된 데는 삼성전자의 대응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6일 대국민 사과에서 전 세계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사과할 정도로 노사 갈등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최대 리스크라는 점도 확인됐다. 향후 노조와의 관계 설정이 삼성전자의 과제로 부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경기지방노동청에서 진행된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 서명식에서 여명구 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부사장)은 “잠정 합의가 상생의 노사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겠다”며 “회사는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노사 상생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영현 DS 부문 대표이사 겸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 대상 담화문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갈등의 시간을 뒤로하고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 나아가는 일”이라며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한다면 다시 한번 더 큰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와의 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보인 태도가 ‘노사 상생’에 부합했느냐를 두고는 의문이 제기된다. 노조의 요구 수준이나 협상 방식, 노조 운영 과정 등은 대다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비판을 받았지만, ‘성과급 체계 투명화’ 요구는 업계 안팎에서 수년 간 지적돼 온 문제였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기준인 경제적부가가치(EVA) 산출 방식·근거를 사측이 따로 공개하지 않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단체교섭에서 중요한 한 축이 교섭 태도인데, 사측이 OPI 투명화나 제도화에 대해 보인 태도가 노조의 회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날 밤까지도 협상 타결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노사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은 데는 오랜 무노조 경영 기조로 인해 노조를 대화·협력 상대로 여기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삼성전자의 관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도 미숙했지만 회사도 대외적으로 노조를 비난하는 등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 깨진 이후 노조와 사실상 제대로 교섭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며 “삼성이 국내 1위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게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노조에 대해서도 과거의 통제 위주 방식을 벗어나 대등한 파트너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년에 한 번 하는 임금교섭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상시 소통 채널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파업 위기를 해결한 만큼이나 노사 관계에서 큰 숙제를 안게 됐다”며 “앞으로 바람직한 노사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