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은둔자로 불리는 피터 도이그 앓이는 제법 오래됐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피터 도이그는 한국 미술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개인전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미학적 추측에 가까운 확신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사실일 거다.
최근 몇년간 한국 미술계는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트렌디한 시장으로 급부상했지만 그 이면은 피터 도이그가 가장 혐오하는 ‘철저한 계급화와 서열 매기기, 그리고 블록버스터 전시 다반사와 높은 가격대의 작품만 팔리는 자본의 재현’ 시장이 됐다. 누구의 그림이 투자 가치가 높은지, 누가 소장했는지, ‘리셀(Resale)’ 가격이 얼마인지가 작품의 아우라를 압도하는 시장이 된 거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피터 도이그는 내 작품이 왜 그렇게 고가인지 모르겠다며 도리어 불쾌감을 드러내는 작가다.
그런 그가 지금 파리 16구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르코르뷔지에 재단이 본부로 사용하는 주택 건물 ‘라 로슈’에서 2026년에 제작한 신작 13점을 포함해 미발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니 괜히 그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만약 나에게 돈이 있고 시간도 하락한다면 오직 그 전시를 보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를 탔을 거다.
나는 그만큼 피터 도이그를 좋아하지만 르코르뷔지에도 그 못지않게 좋아한다. 그러다 아득하게 치솟은 비행기표 가격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문득 깨닫는다. 건축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지만 세대를 넘어 어떻게 서로를 호출하며 공명할 수밖에 없는지.
르코르뷔지에가 평생을 바쳐 건축에서 불필요한 장식과 권위의 뼈대를 걷어낸 이유는 단 하나, 자본가들의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 존엄하게 숨 쉴 수 있는 ‘삶을 위한 건축’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호숫가 작은 집과 말년에 자기 자신을 위해 지은 단 네 평짜리의 소박한 오두막을 보시라. 그곳에는 부의 과시도 건축적 위엄도 없다. 오직 한 인간이 자연의 빛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만이 존재한다. 부자가 아니어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만 하는 보편적인 평화. 그것이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영혼이었다.
반면 피터 도이그의 경우는 그의 그림처럼 삶의 방식에도 레이어가 있다. 덩그러니 놓인 낡은 카누, 얼어붙은 연못, 맹렬하게 우거진 열대 정글의 넝쿨 등 그의 시선이 어디에 닿든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방인의 시선이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결코 차갑지 않고 아주 기묘할 만큼 따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 신비롭게 보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한 ‘다정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수줍은 신비’라고 해야 할까?
사실 처음에는 그의 그림에 먼저 끌렸지만, 실은 그가 이웃 친구들을 위해 자기 창고에서 영화 보는 날을 만들고 영화 포스터까지 그려서 나눠줬다는 서사에 완전 반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피터 도이그가 분명 좋아했을 법한 영화와 음악에 대한 촉이 있다. 요 라 탱고의 음악과 빔 벤더스의 영화, 그리고 르코르뷔지에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가로로 긴 호수 풍경까지. 그 풍경 앞에 피터 도이그의 책과 영상만 놓아두어도 ‘피터 도이그의 밤’을 연출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피터 도이그 그림이 그렇듯 기억의 층이 겹겹이 쌓여 모호하게 다층적으로 다가오듯, 그의 전시도 볼 수 없으니까 피터 도이그스러운 음악과 영화, 건축적 요소와 더불어 오히려 더 풍요롭게 즐기게 된달까? “그림이 스스로를 그려나간다”고 했던 피터 도이그식의 결론이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