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안의 화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초호황에 따른 영업이익 배분 문제이다. 작년에 노사가 합의한 영업이익 10% 성과급 지급 규정에 따른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어마어마한 성과급. 이에 자극받은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불사하면서 몰아붙인 끝에 쟁취한 막대한 성과급과 그 과정에서의 혼란들. 아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어쨌든 영업이익 일정 비율의 성과급 지급 보장이 맞는 것이냐를 두고는 이미 많은 사람이 갑론을박했으며 앞으로도 많은 전문가가 끼어들 터이니,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명색이 재정학자인 내가 끼어든다면, 그보다는 정부의 초과세수 활용 논란이 제격이겠다. 이는 지난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란 글에서 시작됐다. 이 글이 나온 직후, 정부가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에게 나눠주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로 인해 코스피가 하락했다는 기사까지 등장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엑스를 통해 김 실장의 글은 ‘기업의 초과이윤으로 발생한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 검토’인데, 일부 언론이 이를 왜곡 편집해 가짜뉴스를 유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의 글 전문을 읽어보면, 영업이익 증대에 따른 (법인세, 고액 성과급에 부과되는 소득세, 여윳돈 소비에 붙는 부가가치세 등의) 초과세수 활용 방안인 것이 분명하다. 다만, 다소 애매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즐기는 악마의 편집 기법을 적용하면 ‘초과이윤의 국민 배당’이라고 할 만한 소지를 남기기는 했다. 어떤 부분이 짜깁기 편집의 근거가 되었는지, 그렇다면 진의(眞意)는 무엇인지 따져보자. 그리고 이를 평가하자.
국민 배당금이란 명칭 안 어울려
글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조심스러운 전망이긴 하지만, AI 시대에 한국은 기술독점력을 지녀서 해당 기업은 지속적으로 초과이윤을 창출하며 그 덕에 정부 초과세수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니 초과세수를 양극화 해소에 활용하자. 이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전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를 가칭 국민배당금이라고 부르되,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설계하자.’
악마의 편집 빌미가 된 첫 번째는, 글의 중간중간에 ‘기업 초과이윤으로 발생한 초과세수’라고 써야 할 것을, 그냥 뭉뚱그려 초과이윤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글이 장황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축약한 것은 좋은데, 그렇다면 그냥 초과세수라고 표현하는 게 좀 더 나았을 것이다.
다음은 초과세수라는 용어 자체의 부정확함이다. 초과세수는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금을 의미한다. 작년에 짠 올해 예산의 세수 예측치에는 반도체 초호황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세수 실적은 예측치를 초과할 테니 초과세수가 발생하는 게 맞다. 그러나 올해 편성하는 내년도 예산에는 반도체 초호황이 반영될 것이고 그만큼 세수 예측치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내년의 세수가 대폭 증가한다고 해도 이는 초과세수가 아니다. 단지 예상대로 재정이 넉넉해지는 것이다. 초과세수라는 용어를, 예외적인 호황 덕에 통상 기대할 수 있는 규모를 뛰어넘는 세수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김 실장은 구조전환에 따른 지속적인 초과세수라고 했으니, 이 개념도 맞지 않는다.
끝으로 김 실장이 제안한 양극화 해소 프로그램 예시들을 보면, 이 전략은 ‘AI 전환 시대의 국민역량 강화 프로젝트’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게 적당하다. 비록 예시 중 하나로 농어촌기본소득도 있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 국민배당금이라는 명칭이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SNS에 올리는 글은 신문 칼럼과는 다르다. 초고를 읽어본 후 내용을 고치고 문장을 가다듬을 여유가 없다. 그러니 전체 글의 논지를 두고 따지는 게 온당하지, 단어 하나하나에 시비 걸 일은 전혀 아닐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에 올리는 글과 나 같은 백면서생이 올리는 글의 무게는 천양지차다. 그렇다면 과연 이 글 곳곳에 배치된 애매한 표현들을 단순한 부주의로 치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정책실장의 제안은 바람직한 방향
이제 평가할 차례다. 나는 김 실장의 주장을 지지한다. 이번 정부가 AI 전환에 따른 산업 경쟁력 강화에 진심임을 반기는 한편,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양극화 문제는 소홀한 게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양극화 해소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방안도 단순한 나눠주기식보다 국민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다만, 이를 너무 조심스럽게 제안한 것은 불만이다. 김 실장은 ‘AI 시대의 호황이 지속되어 초과세수가 계속 들어온다면’이라는 전제하에서 양극화 해소 전략을 펼치자고 했다. 그런데 이는 여유 재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유 재원 유무에 상관없이 마땅히 추진해야 한다. 김 실장 제안이 실제 정책과 제도로 구현되길 기대한다.
논란을 초래한 ‘기업 초과이윤 활용’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초과이윤을 정부가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는 있다. 정부 역할을 연구하는 학자 중 마리아나 마추카토라는 영국 교수가 있다. 그녀는 인터넷, 스마트폰, 자율주행 등 혁신 제품 등장에는 정부 기여가 지대했음을 밝혔다. 공공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은 틀렸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과 공조해 혁신을 견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가 투자했으면 성공의 과실도 함께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과거라면 일축했을 주장이다. 하지만 AI 전환 과정에서 정부의 관련 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요즘에는 고민할 만하다. 김 실장이 그랬듯 나 역시 정부의 확실한 지원과 투자를 전제로,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긍할 수 있게 설계되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된다는 것을 조건으로, 이 주장의 정책화를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