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가 휙 지났다. 오이의 덕은 나날이 찬란하다. 한국인의 여름날 오이 사랑은 유서 깊은 바다. 성균관에 학적을 두고도 임금의 사상 검열과 글쓰기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다가 정조에게 찍혀 퇴학당하는 데 이른 이옥(李鈺·1760~1813) 또한 일찍이 오이를 추앙했다. 이옥은 제 집 앞 남새밭에 해마다 오이 모종 60~70주를 심어 가꾸었다. 덕분에 여름날의 먹을거리가 해마다 넉넉했다. 식탐으로 다가 아니었다. 살림살이의 감각이 있었다.
첫물, 두물, 세물, 끝물 오이를 따며 이런 감각을 드러냈다. “시거나 짜거나 날로 무치는 나물이나 익혀 먹는 음식이나 모두 오이로 된다(酸醎生熟, 皆瓜也)”. 늘 오이국·오이김치·오이나물·오이장김치를 먹었으니 칼질에도 예민했다. 채칠 때에는 네모진 편을 내 채치거나 돌려 깎아 채쳤다(菜或方或圓). 국거리는 대개 말굽 모양으로 썰었다(羹多馬蹄削). ‘말굽썰기’라니? 현대 조리 용어로는 ‘반달썰기’일 테다. 속 파고 반달썰기 해보시라. 정말 말굽꼴이 난다. 요리사가 오이에 구사하는 열두 가지 이상의 칼질까지는 아니어도, 막채썰기·어슷썰기·깍둑썰기 이상의 칼질에 유념한 이가 이옥이다.
그의 눈에 오이 과(瓜)는 여덟 팔(八) 둘이 겹친 형상이었다. 본 김에 너스레도 떨었다. “내가 지금 팔팔육십사, 64종의 오이 반찬을 해 먹으니 또한 부자 아니냐(余今食八八六十四種, 不亦富哉)!” 잘 씻어 소금물에 살짝 절인 오이는 껍질째 먹는,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였다. 큰 놈은 오이소박이·오이김치·오이지 따위에 마침 맞았다. 노각은 노각대로 별미였다. 껍질 벗기고, 시어진 속을 바른 노각은 “더위를 물리치는 생채가 되었다(爲避暑菜).” 그러고 보니 한국인의 일상에서 노각은 전보다는 덜 흥성한 듯하다. 덩달아 노각채·노각무침·노각김치·노각국도 살짝 뒤로 물러선 듯하다.
잠깐 품종을 돌아본다. 모든 풋오이가 다 노각으로 성숙하지는 않는다. 노각으로 익는 오이는 한반도 재래종이다. 오이의 한자어 가운데 하나가 ‘황과(黃瓜)’다. 익어 누렇게 되다, 한반도 재래종은 그랬다. 그러다 현대 한국인은 취청과 다다기를 먹게 되었다. 취청은 짙은 청색이다. 그 가운데 솜털 같은 가시가 덮인 놈이 가시오이고 가시가 없는 놈이 청오이다. 다다기는 풀빛이 옅다. 그 가운데 흰빛이 우세한 놈이 백오이다. 즙 팡 터지고 향 훅 끼치기로는 역시 취청이고, 더구나 가시오이다. 날로 먹거나 냉국, 물회 등에는 취청이다. 소박이와 오이지에는 덜 무르는 다다기가 좋다. 국을 끓이거나 구울 때에도 그렇다.
끓여? 구워? 또한 이어지고 있는 식생활의 한 자락이다. 누군가는 오이전을 부치고 오이를 굽고 있다. 오이로 채수를 내고 국을 끓이고 있다. 오이무름도 오이선도 그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에 갇힌 유물만은 아니다. 옛글을 읽다가 오늘로 돌아온다. 한국인, 지금 오이를 잘, 제대로 쓰고 먹고 있나. 현대 한국어는 오이에 어떤 이야기를 남기려나. 오이의 덕을 다시 떠올린다.
수박은 계절의 왕자를 자처할 만하다. 복숭아는 향으로 한철을 뒤흔들 만하다. 오이는 다르다. 그저 입 다물고 늦여름까지 열매 맺으며, 상하도 귀천도 없이 모두의 밥상에 함께할 뿐이다. 달리 무슨 말을 더할까. 먼저 이 말 한마디를 해야겠다. 고맙다, 오이야!
고영 음식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