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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정치적 효능감

입력 2026.05.24 19:54

수정 2026.05.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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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노무현재단 이사인 조수진 변호사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이 열리는 봉화마을에 일단의 일베 무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은 봉화마을 곳곳을 일베를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손가락 표시를 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손가락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추모객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게 자기들을 조롱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호의를 보이는 걸 비웃기 위한 ‘작전’이다.

이를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티셔츠를 입고, 어떤 손가락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더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데 제재할 방법이 없다. 나가라고 말하고 채증 사진을 찍는 것 정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게 노리는 점이다. 그저 ‘어그로’를 끌어 관심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시스템과 상대가 철저하게 무력화되는 것, 이 부분이 효능감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이들이 간파한 것이 있다. 사회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법과 달리 사회는 ‘믿음’이다. 있다고 믿는다면 마법과 같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다고 무시하면 아무런 힘도 없다. 오직 법만 실질적 힘이 있을 뿐이다.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 압력 따위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들은 법의 한계에 점점 다가서는 방법으로 과감해진다. 혐오 발언이 대표적이다. 금지된 구역의 어디까지 다가서서 몇 데시벨까지 스피커 볼륨을 올리면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지를 ‘실험’하고 거기에 최적화해 행동한다. 이들에게 사회는 사회적 압력을 무력화하고 법의 한계를 실험하는 실험장에 불과하다.

일베, 법 한계 활용해 사회 무력화

왜 저런 행동을 즐기는가?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수준에서의 ‘쾌락’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쾌락이다. ‘진지’하게 최적화를 추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쾌락이다. 한계에 근접하는 것, 가장 가까이 다가서려는 최적화는 효율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미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 가장 황홀해진다. 어그로의 강도뿐만 아니라 정밀함이 중요하다. 강도만 높고 무딘 행동은 그저 추한 것에 불과하다. ‘어그로’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다.

두 번째 쾌락은 세상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이다. 정치적 효능감은 세상을 향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중에서도 세계를 ‘정지’시키는 것만큼 효능감을 주는 것이 없다. 현대사회는 형벌의 최후 수단성을 따른다. 법의 개입과 형벌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적용한다. 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를 역으로 이용해 사회의 자율성을 무시해버리면 법의 공백 지점에서 세계를 정지시켜버릴 수도 있다. 세계가 정지돼버리는 것보다 더 큰 정치적 효능감은 없다.

내 앞의 상대가 무력해져서 좌절하는 것은 더 직접적인 정치적 효능감이며 쾌감이다. 상대가 더러워서 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할 수도 없다. 위에 나온 봉하마을 직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도 사진 채증을 하며 끝내 따라다녀야만 한다. 상대가 무력화될수록 정치적 효능감은 극대화되며 그의 무력과 좌절, 슬픔은 결국 나의 쾌감이 된다.

세 번째는 ‘사회적’ 존재감이 주는 쾌감이다. 조수진 변호사는 저들이 특정 사이트에 올릴 사진 인증 챌린지를 수행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 인증 챌린지에 가장 엽기적이고 과감하게 도전한 사람에게는 무리 안에서 ‘명성’이 주어진다. 무리(=부족)에서의 명성이라는 사회적 효능감 역시 극대화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족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를 파괴하며 부재하게 만든다.

힘의 법과 존재감의 부족, 그리고 미학적인 나. 여기에 우리가 ‘알던’ 사회가 작동하고 들어설 여지는 이제 거의 없다. 내가 이렇게 처신하면 상대는 저렇게 응답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상호작용망으로서의 사회는 없다. 오히려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사람들은 사회적 반경을 더욱 최소화할 것이다. 법을 최소화한 이유가 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함이었지만, 반대로 법이 내어준 자리에서 악당들이 활개를 치며 사회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법은 혐오에 맞서는 행동 권장해야

이 모든 것이 저들에게 황홀한 효능감·쾌감을 준다. 그렇다고 법에 모든 것을 맡기며 형벌의 최후 수단성을 철회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를 법으로 대체해 경찰국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들이 사회를 파괴하는 차별과 혐오의 행동에 맞서 저지하는 사회적 행동을 보호하고 권장하는 입법과 행정이다. 국제 인권 규범은 언제나 보호(protection)와 권장(promotion)이 초점이었다.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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